KT는 3년 6개월간의 기다림 끝에 지난해 8월 KT 광화문빌딩 웨스트(WEST) 리모델링을 마치고 입주를 시작했다. 오피스 공간에는 KT의 인공지능 전환(AX) 업무 등을 맡을 부서들이 입주했고 외벽의 초대형 미디어월은 화려한 영상미로 시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KT의 새로운 광화문 시대를 여는 2막으로 여겨졌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경기 광명시와 서울 금천구 일대에서 새벽에 모바일 상품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소액결제 됐다는 문자를 받은 이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피해 범위는 경기 부천시, 서울 서초구·동작구,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등으로 번져 나갔다.
이렇게 시작된 KT 사이버 침해 사건은 KT의 근본인 이동통신 가입자가 대거 이탈하는 결과를 낳았고 김영섭 대표의 연임을 저지시켰다. 혼란의 중심에서 쇄신을 이끌어갈 적임자로 박윤영 차기 대표가 선출됐지만 김 대표가 약속된 3월 말까지 임기를 이어 가기로 하면서 사업구상에 차질을 빚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KT는 49개 계열사, 임직원 5만5000여명을 거느린 자산규모 기준 재계 순위 13위 기업이다. 1981년 12월 한국전기통신공사로 출범한 이후 40여년간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혁신의 선봉에 섰다. 지금은 통신을 넘어 인공지능(AI), 클라우드까지 아우르며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사이버 침해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KT는 지난해 매출 28조2727억원, 영업이익 2조4505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6.97%, 202.72% 증가한 수치다. 강북 본부 부지 개발로 인한 일회성 부동산 분양 이익과 클라우드·AI 데이터센터(AIDC) 등 신사업 활약 덕분이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전망은 밝지 않다. 침해 사태의 책임이 KT에 있다는 사실이 민관합동조사단 조사 결과 드러나면서 KT는 가입자 보상안과 해지 위약금 면제 방침을 밝혔다. 이후 14일간 이어진 위약금 면제 기간동안 31만2902명의 가입자가 이탈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시기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선 경쟁사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낙수효과를 누렸다.
당장의 수익도 문제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신뢰 회복이 시급한 상황이다. KT는 데이터 무료 제공, 콘텐츠 이용 혜택 등 보상안을 발표한 것 외에 구체적인 정보보안 강화책은 내놓지 못했다. 이는 경쟁사 사례와도 비교된다. SK텔레콤의 경우 지난해 4월 정보유출 사태가 발생한 이후 한달여 만에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고객신뢰위원회를 발족해 대안을 모색해왔다. 지난해 10월에는 정기 인사에서 법조인 출신으로 위기관리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정재헌 CEO를 선임하며 분위기 쇄신을 꾀하고 있다.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AI의 경우 챙길 현안이 더 많다. KT는 2020년 구현모 전 대표 취임과 함께 디지털전환(DX) 슬로건을 ‘디지코(DIGICO) KT’로 정하고 AI, 클라우드, 콘텐츠 분야 신사업 발굴에 매진했다. 하지만 구 전 대표의 임기가 종료된 2023년 3월 이후로도 후임을 찾지 못했고 8월에서야 김영섭 대표가 취임했다.
김 대표 체제에서는 AI 슬로건이 변경됐다. 그는 2024년 2월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 박람회 MWC 2024 현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KT를 ‘AICT(AI+ICT) 컴퍼니’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공개했다. 박윤영 차기 대표 체제에서 이를 발전시키든, 새롭게 구상하든 공백이 불가피한 만큼 사업 추진에 차질이 우려된다. KT의 자체 AI 모델 ‘믿음 2.0’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최고AI책임자(CAIO)가 엔씨소프트의 AI 전문기업 NC AI로 자리를 옮기며 공석이 된 점도 우려를 낳는다.
2024년 9월 AX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MS)와 체결한 계약이 KT에 불리하게 이뤄졌다는 논란도 헤쳐가야 한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종합감사에서 “KT 클라우드가 국내에서 자체 제공하던 서비스를 3~4배 비싼 MS 클라우드로 바꾸고, 5년간 2조3000억원 규모 계약을 체결하면서 사용하지 않아도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는 제보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