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이번 1심 판결의 핵심은 ‘군 병력의 국회 투입’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19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윤 전 대통령 등 8명의 내란 혐의 사건 선고 공판에서 “대통령에게 헌법상 비상계엄 선포 권한이 부여돼 있더라도 그 행사로 국회와 행정·사법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한다면 내란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사건의 핵심을 ‘군 병력의 국회 투입’으로 규정했는데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이 군을 국회에 보낸 행위의 본질이 “국회의 헌법적 권능을 실질적으로 행사하지 못하게 하려는 데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는 내란죄 성립 요건인 ‘국헌문란의 목적’이 인정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선고를 시작하며 내란죄의 역사적 의미를 짚었다. 영국 찰스 1세의 반역죄 판결을 인용하며 “왕이라 할지라도 의회를 공격하는 건 주권을 침해하는 반역죄라는 인식이 민주주의 토대”라고 전제했다. 이어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군을 동원해 의회 기능을 마비시키려 한 행위는 전형적인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진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명시했다.
재판부는 군 철수 시점을 명확히 정하지 않고 대통령의 판단에 맡긴 점 등을 들어 “국회가 상당 기간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도 지적했다.
또 다른 구성요건인 ‘폭동’ 여부와 관련해서도 “사회의 평온을 해칠 정도의 위력이 행사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합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폭력적 수단을 통해 국회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했다”며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와 근본을 훼손한 중대한 범죄”라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 측이 주장해 온 ‘자유민주주의 수호’ 명분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가 위기 상황을 바로잡으려 했다는 주장은 동기에 불과하다”며 “실체는 무력을 동원한 국회 진압 시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신념을 내세워 헌정 질서를 침해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경찰 송치 기록 외 자료를 종합해 기소가 이뤄진 것으로 보이며 수사 및 기소의 적법성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로 “계엄 선포와 그에 따른 군·경 활동으로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됐고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정치적 신용도도 하락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련자들에 대한 대규모 수사와 재판이 이어지며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게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1심 판결은 향후 항소심과 대법원 판단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윤 전 대통령은 여전히 6건의 1심 재판이 남아 있다. 그는 서울중앙지법에서 3대 특검(내란·김건희·순직해병)이 기소한 1심 재판 6건을 남겨두고 있다. 특검별 2건씩이다.
윤 전 대통령은 적어도 올해 상반기까지 1심 재판을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3대 특검법은 1심 재판을 공소제기일로부터 6개월 이내 끝내도록 정하고 있지만 아직 일정이 잡히지 않은 사건도 있기 때문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이 기소한 나머지 두 건의 1심 재판은 상대적으로 진도가 빠른 편이다. 이른바 ‘평양 무인기 의혹’ 사건(일반이적 등 혐의)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판사 이정엽)에서 심리 중이다. 재판부는 오는 23일 10차 공판을 열 예정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 사건으로 추가 구속영장이 발부돼 오는 7월까지 구속 상태를 유지한다.
윤 전 대통령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 재판에서 위증한 혐의로도 내란 특검팀에 의해 기소됐다. 이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류경진)는 오는 26일 피고인 출석 의무가 없는 2차 공판준비기일을 연다. 재판부는 오는 4월 16일 첫 공판기일을 연 뒤 변론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순직해병 특검팀(특별검사 이명현)이 기소한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및 이종섭 호주대사 도피 의혹(범인도피) 사건은 본격적인 공판기일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해당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우인성)가 심리 중이다. 윤 전 대통령은 다음 달 18일 공판준비기일이 잡혀 있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도 지난해 12월 말 두 사건으로 윤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이 당선된 20대 대선 전후로 명태균씨로부터 무상 여론조사를 불법 수수했다는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부인 김건희 여사가 공범인 사건인데 김 여사를 심리한 1심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는 명씨의 자발적 제공이라며 김 여사 혐의를 무죄로 봤다. 특검은 수사 기간 종료를 앞두고 윤 전 대통령을 추가 기소했다. 이 사건은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진관)가 심리 중이다. 1차 공판은 다음 달 17일 잡혀 있다.
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