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가상자산시장에서 미국은 비트코인을 국가 전략 자산으로 비축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고, 주요국들은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결제망에 편입하며 디지털 금융 패권 전쟁에 돌입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보호’와 ‘규제’라는 프레임에 갇혀 글로벌 트렌드와의 ‘규제 탈동조화(디커플링)’가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서 30여년간 규제를 다루다 이제는 국내 최대 가상자산거래소인 업비트에서 투자자 보호를 위해 최전선을 지키고 있는 이해붕 투자자보호센터장은 2일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와의 인터뷰에서 “디커플링이 지속된다면 한국 금융이 세계 시장에서 낙오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한국 가상자산시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규제 당국자에서 시장 참여자로…“현장에서 본 규제는 ‘생명줄’”
금감원에서 30여년간 규제의 틀을 다듬어온 이 센터장은 현재 업비트에서 투자자보호센터장과 이상거래감시위원장이라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는 “‘알고서 하는 가상자산 투자’ 환경이 마련될 수 있도록 ‘올바른 투자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현재 미 대통령 직속 워킹그룹(PWG) 리포트와 유럽 가상자산규제법안(MiCA) 등 글로벌 선진 규율 체계를 직접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는 등 제도적 공백을 메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금감원 재직 시절 시장을 ‘위험한 투기장’으로 바라봤던 시각이 현장에 들어와 완전히 바뀌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현장에서 목격한 건전한 사업자들의 자정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다”며 “업계가 겪는 진짜 고충은 과도한 규제가 아니라 오히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규제의 불확실성’”이라고 짚었다. 특히 현장에서 규제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 보이스피싱 피해 구제 과정에서 법적 권한의 한계를 마주하며 “규제는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지키는 마지막 생명줄임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 센터장은 금융당국의 ‘안전성’과 업계의 ‘혁신’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가교 역할에도 매진하고 있다. 그는 “글로벌 규제 표준과의 교집합을 정확히 전달해 혁신을 질식시키지 않으면서도 책임 있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명”이라며 “한국 시장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디지털 금융 생산국’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의 ‘디지털 금융 독식’ 선언…“한국, 자본 종속화 우려”
이 센터장은 현재 상황을 단순히 새로운 투자처의 등장이 아닌 거대한 ‘금융 패권의 이동’으로 규정한다. 특히 미 백악관의 리포트와 최근의 공격적인 정책 행보에 주목했다. 그는 “미국의 움직임은 명확하다.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넘어 은행의 수탁 허용,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등을 통해 디지털 자산을 제도권 금융의 심장부로 밀어 넣고 있다”며 “이는 달러 패권에 이어 ‘디지털 금융과 기술 부문’의 패권까지 미국이 독식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고 진단했다.
이 센터장은 한국이 이 흐름에서 소외돼 ‘규제의 디커플링’이 장기화될 경우 세 가지 치명적인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첫째는 ‘디지털 금융 자본의 종속화’다. 국내 기관과 업체들이 규제에 막혀 시장 진입조차 하지 못한 사이 국내 자본은 월가의 선진화된 상품을 찾아 떠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수수료와 운용 수익 역시 고스란히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둘째는 ‘산업의 갈라파고스화’다. 이 센터장은 “글로벌 표준인 스테이블코인 인프라에서 도태된다면 한국 핀테크 산업은 세계 결제망과 호환되지 않는 ‘고립된 섬’이 될 수밖에 없다”며 “마지막으로는 ‘혁신 인재와 기술의 엑소더스’다. 규제 명확성을 갖춘 국가로 유망 웹3 기업들이 본사를 옮기는 현상을 방치한다면 국가적 손실은 자명하다”고 는 분석했다.
이 센터장은 “우리는 더 이상 미국이 만든 상품을 소비하기만 하는 ‘소비국’에 머물러선 안 된다”며 “우리 손으로 디지털 자산 ETF와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파는 ‘생산국’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성찰과 2단계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나아갈 길
이 센터장은 2024년 7월 시행된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에 대해 “절반의 성공”이라며 “시스템적 안전은 확보했으나 본질적인 규제 공백은 여전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법 시행 이후 고객 예치금이 은행에 보관되고, 이상 거래 상시 감시가 의무화되면서 가상자산사업자라는 금고는 확실히 안전해졌다”며 “과거처럼 거래소가 해킹되거나 파산했을 때 고객 자산이 증발할 공포는 사라져 시스템적으로 무법지대라는 오명은 벗었다”고 설명했다.
코인에 대해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이 센터장은 “현재의 법은 불량 식품이 제조되는 공장(발행 단계)은 규제하지 못한 채, 이를 판매하는 마트(거래소)만 단속하는 격”이라며 “백서(White-paper)의 기재 사항에 대한 법적 책임이 부재하고, 거짓 공시에 따른 손해배상 근거가 미비한 상황에서 정보 비대칭 문제는 여전히 시장의 아킬레스건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센터장은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2단계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단순한 ‘처벌법’을 넘어 시장의 올바른 성장을 이끄는 ‘나침반’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장 시급한 것은 ‘발행인 규제와 공시 의무의 명문화’”라며 “증권 시장과 마찬가지로 가상자산 발행자에게도 백서 기재 사항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우고 정기 공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법인과 기관 투자자의 시장 참여 허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관이라는 ‘스마트 머니’가 유입돼야 비로소 변동성이 억제되고 시장의 안전판이 형성된다“며 “개인 투자자 중심으로만 흘러가는 지금의 기형적 구조에서는 시장의 자정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관의 철저한 준법 감시 시스템이 오히려 일반 투자자를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장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트코인, 이제는 ‘하이브리드 안전자산’으로 재정의할 때”
이 센터장은 비트코인을 ‘하이브리드 안전자산’으로 정의했다. 그는 “비트코인은 거시경제 변수와 유동성에 반응하는 ‘위험자산’의 성격과,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가치를 저장하는 ‘안전자산’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독특한 자산”이라며 “기관과 국가가 전략 자산으로 편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성장성을 가진 디지털 금’으로서의 지위를 굳히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이더리움이나 솔라나 같은 알트코인은 해당 생태계의 혁신성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는 ‘디지털 벤처’ 성격이 강하므로, 자산군에 따른 차별화된 규제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현물 ETF 도입에 대해서는 “접근성 개선이라는 이면에는 금융회사가 위험은 개인에게 넘기고 수수료만 챙기는 ‘비대칭적 위험 전가’의 가능성도 존재한다”며 정교한 규제 마련을 경계했다.
◆“지식 없는 투자는 투기…‘지능형 가디언’으로 투자자 보호할 것”
이 센터장은 투자자들을 향해 중요한 조언을 건넸다. 그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남에게 설명할 수 없는 자산에는 단 1원도 넣지 말라”며 “진정한 확신은 프로젝트의 지속 가능성과 기술적 가치를 이해하는 ‘지식’에서 나온다”고 철칙을 전했다.
업비트 투자자보호센터의 올해 비전은 ‘지능형 가디언(Intelligent Guardian)’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투자자가 묻기 전에 먼저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맞춤형 가이드를 제공하는 ‘능동적 보호 서비스’로의 전환을 꿈꾸고 있다.
이 센터장은 “투자자 보호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글로벌 탑티어 거래소로 가기 위한 본질적인 인프라다. 정보를 단순히 쌓아두는 곳이 아니라, 투자자의 앞길을 먼저 비추는 등대이자 튼튼한 디딤돌이 되겠다”고 힘줘 말했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