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관료 출신 인사들과 전직 은행장들이 속속 주요 대기업의 사외이사로 합류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러한 움직임은 상법 개정 등 경영상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거시경제 흐름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리스크 관리 능력이 검증된 ‘경제통’ 인사에 대한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법조계 및 학계 인사 중심의 재계 사외이사 선임 관행에 서서히 변화가 일지 관심이 쏠린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은 이달 정기주주총회에서 경제전문가들을 대거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정통 관료 출신인 고승범 전 금융위원장을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으로 새로 선임한다. 고 전 위원장은 금융위 사무처장, 부위원장, 위원장 등을 지낸 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이후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초빙교수,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 회장,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으로도 활동 중이다. 에쓰오일의 사외이사이기도 하다. SK하이닉스 이사회는 “고 후보자는 금융위원회 위원장 및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금융 ·경제 정책 전문가로서, 감사업무에 대한 높은 전문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회사의 재무 전략과 리스크 관리, 중장기 경영 의사결정 과정에서 재무 건전성 확보 및 투명한 경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진칼은 수출입은행장과 금융위원장을 지냈던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할 계획이다. 최 전 위원장은 2022년부터 법무법인 화우 특별고문과 사단법인 율곡연구원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CJ, 삼성전기에서 사외이사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민간에서 경력을 쌓은 경제통들의 사외이사진 진입도 이목을 끈다. SK스퀘어엔 서영호 전 KB금융지주 글로벌 사업부문장 부사장이 사외이사로 합류한다. 서 전 부사장은 JP모간증권회사에서 리서치센터장, 글로벌 매니징 디렉터를 역임한 후, 2017년부터 5년 간 KB증권 기관영업부문장 전무, 2022년부터 2년 간 KB금융지주에서 재무총괄(CFO) 역할을 담당했다. SK스퀘어 이사회는 서 전 부사장을 추천한 사유에 대해 “재무 분야에서 전문성을 보유한 금융시장 전문가로서, 국내외 금융기관에서 다양한 분야의 리더 역할을 수행하며 글로벌 자본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유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밝혔다.
전직 은행장도 주요 대기업의 사외이사진으로 활동한다. 롯데지주는 오는 24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조병규 전 우리은행장을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으로 선임하기로 했다. 임기는 3년이다. 조 전 행장은 우리은행에서 경영기획그룹 부행장, 기업그룹 부행장을 지낸 후 우리금융캐피탈 대표이사와 우리은행장을 역임했다.
현대자동차그룹에선 현대모비스가 오는 17일 정기주주총회를 열어 박현주 전 BNY멜론은행 한국대표를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한다. 박 전 대표는 스탠다드차타드은행 APAC지역본부 상무와 전무를 역임한 후, SC제일은행 트랜젝션뱅킹본부 전무, 커머셜기업금융총괄본부 전무와 부행장보를 거쳐 BNY 뉴욕멜론은행 한국대표로 활동했다. 2020년부터 대한항공 사외이사로도 활동 중으로 이달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학대학원 교수는 “그간 경영에 대한 전문성이 낮은 권력기관 출신 인사들이 기업의 사외이사 선임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이사회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본연의 역할보다는 이른바 ‘방패막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의도가 컸다”고 진단했다. 재계의 한 인사는 “이사회 내 경제전문가가 늘어나는 건 강화된 주주환원 강화 기조, 현장 중시형 경영방침이 반영된 결과”라고 전했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