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노믹스] “최애가 간 곳이면 어디든”... K팝 팬덤, 한국 관광의 지형도 바꾸다

# 최애(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방문했다는 고깃집을 찾아 삼겹살을 먹고, 뮤직비디오 촬영지에서 인증샷을 남긴다. 콘서트 티켓이 없어도 상관없다. 아티스트의 흔적을 직접 경험하는 일종의 ‘성지순례’가 글로벌 팬덤 사이의 핵심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K-팝이 관광업계의 고질적 난제인 낮은 재방문율을 해결하고 정부의 ‘해외 관광객 3000만명’ 목표를 실현할 실질적인 핵심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 팬들이 2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ARIRANG)' 공연을 즐기고 있다. 뉴시스
[방탄소년단(BTS) 팬들이 2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ARIRANG)' 공연을 즐기고 있다. 뉴시스

◆관심 넘어 ‘행동’으로... 차별화되는 ‘K-팝 화력’

 

 25일 업계에 따르면 K-팝 팬덤의 관광 효과는 수치와 질적 측면 모두에서 일반 관광객을 압도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3월 1일부터 18일까지 방한 외국인은 109만97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7% 증가했다.

 

특히 지난 21일 방탄소년단(BTS)의 광화문 공연 당일, 외국인 전용 선불카드 ‘와우패스’의 하루 충전액은 30억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를 운영하는 오렌지스퀘어에 따르면 이날 공연이 열린 광화문·시청 일대 상권은 콘서트 주간에만 약 8억원의 결제가 발생해 전년 대비 31.4%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BTS THE CITY ARIRANG SEOUL’ 행사장. 팬들이 체험형 콘텐츠를 즐기며 공연 전후 도심을 누비고 있다. 하이브
‘BTS THE CITY ARIRANG SEOUL’ 행사장. 팬들이 체험형 콘텐츠를 즐기며 공연 전후 도심을 누비고 있다. 하이브

K-팝 팬덤에서 주목할 점은 특유의 ‘행동성’이다. 기존 K-콘텐츠 관광의 주축이었던 영화나 드라마가 화면 속 장소에 대한 ‘추억’을 소비하는 일회성 방문에 그친다면 K-팝 팬덤은 아티스트라는 ‘살아있는 IP’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드라마 촬영지는 한 번 방문해 인증샷을 찍으면 목적이 달성되지만 K-팝은 다르다. 아티스트의 활동에 따라 새로운 성지가 끊임없이 생성된다.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뮤직비디오 촬영지가 추가되고 최애가 오늘 방문한 카페나 식당이 내일의 성지가 된다. 콘텐츠 투어리즘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다. 숙박 예약 플랫폼 올마이투어에 따르면 BTS 공연 발표 직후 48시간 동안 ‘서울행 여행’ 검색량이 155% 치솟으며 팬덤의 즉각적인 행동력을 증명했다.

국립박물관재단과 하이브가 협업한 성덕대왕신종 문양을 활용한 '뮷즈' 판매가 시작된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해외 아미(BTS 팬)들이 굿즈를 구입하고 있다. 뉴시스
국립박물관재단과 하이브가 협업한 성덕대왕신종 문양을 활용한 '뮷즈' 판매가 시작된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해외 아미(BTS 팬)들이 굿즈를 구입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 또 가야지”... 관광업계가 갈망하던 ‘우량 리핏 관객’

 

팬덤 투어리즘의 진짜 가치는 ‘높은 재방문율’에 있다. 일반 관광객이 새로운 경험을 위해 여행지를 바꾸는 것과 달리 팬덤은 아티스트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한국을 반복해서 찾는다.

 

이러한 구조는 관광업계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다. 단발성 방문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소비가 누적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SM엔터테인먼트 사옥이 위치한 서울 성수동이 대표적이다. 외국인 팬들은 사옥 구경을 시작으로 ‘광야@서울’ 샵에서 굿즈를 구매하고 성수동 일대의 브랜드 팝업스토어를 섭렵한 뒤 서울숲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정형화된 관광 코스를 밟는다.

 

성수동 인근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A씨는 “SM이 들어선 이후 동네 전체가 힙한 성지로 변모하며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며 “가방에 아이돌 키링을 주렁주렁 단 외국인들의 모습은 이제 일상적인 풍경”이라고 전했다.

◆도시 전체를 아티스트로 물들이다…하이브 ‘더 시티’의 마법

 

하이브는 이러한 팬덤의 반복성과 확장성을 ‘더 시티(THE CITY)’ 프로젝트로 구조화했다. 202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BTS 콘서트와 함께 시작된 이 모델은 콘서트가 열리는 도시를 하나의 아티스트 콘텐츠로 펼치는 방식이다. 공연 전후 도시 곳곳의 먹거리, 숙박, 쇼핑, 체험 요소를 유기적으로 묶어 팬 경험을 확장한다. 이번 BTS 광화문 공연을 기념한 ‘더 시티 서울’ 역시 오는 4월19일까지 이어진다.

 

하이브 측은 “공연이 열리는 도시 전체를 아티스트 IP로 꾸미고 다양한 즐길거리를 제공하는 더 시티 프로젝트를 통해 공연 산업을 고부가가치 관광상품으로 진화시켰다”며 “숙박, F&B, 쇼핑, 관광 등 지역 상권과 결합해 공연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중고등학교 문화제를 콘셉트로 진행된 캐럿 문화제. 히사야오도리 공원 일대에는 실제 현지 학교의 문화제를 본뜬 공간이 운영됐. 정희원 기자
일본의 중고등학교 문화제를 콘셉트로 진행된 캐럿 문화제. 히사야오도리 공원 일대에는 실제 현지 학교의 문화제를 본뜬 공간이 운영됐. 정희원 기자
세븐틴 더 시티 나고야 캐럿 문화제에서 한 팬이 멤버 준에게 메모를 남기고 있다. 정희원 기자
세븐틴 더 시티 나고야 캐럿 문화제에서 한 팬이 멤버 준에게 메모를 남기고 있다. 정희원 기자

이 모델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도 확장되고 있다. 세븐틴을 예로 들 수 있다. 세븐틴은 지난해 11월부터 12월까지 일본에서 ‘세븐틴 월드투어 뉴 인 재팬’을 열고 약 42만 관객을 동원했다.

 

콘서트가 열린 지역마다 현지 중·고교의 문화제 콘셉트를 차용한 ‘캐럿(팬덤명) 문화제’를 운영해 호응을 얻었다. 이뿐 아니라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도 랜드마크에 팬덤 컬러를 입히고 다양한 콜라보를 통해 해당 도시의 경험을 더 풍성하게 할 수 만들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서울 광화문광장 컴백 공연을 하루 앞둔 20일 인천공항 제1터객미널 교통센터 하이커스테이션에서 BTS 해외팬이 메시지를 적은 메모지를 붙이고 있다. 뉴시스
방탄소년단(BTS)의 서울 광화문광장 컴백 공연을 하루 앞둔 20일 인천공항 제1터객미널 교통센터 하이커스테이션에서 BTS 해외팬이 메시지를 적은 메모지를 붙이고 있다. 뉴시스

◆‘서울 집중’ 해결할 치트키... 공연 하나에 인천 방문율 6배 급등

 

팬덤 관광의 또 다른 특징은 활동 반경의 확장성이다. 반복 방문이 이어질수록 팬들은 서울을 넘어 새로운 지역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여행을 자주 하는 이들이 결국 소도시의 매력을 찾아 떠나는 것처럼 서울을 자주 찾는 K팝 팬덤 역시 지역의 숨은 명소를 발굴하는 탐험가가 되고 있다”며 “공연 전후로 며칠 더 머물며 지역 상권에 온기를 불어넣는 긍정적 효과가 상당하다”고 전했다.

지난 20일 BTS 컴백과 함께 라인프렌즈스퀘어 명동점이 외관 파사드를 BT21 캐릭터로 교체했다. 오른편에는 BTS와 ARMY를 환영한다는 전광판 문구가 눈에 띈다. 정희원 기자
지난 20일 BTS 컴백과 함께 라인프렌즈스퀘어 명동점이 외관 파사드를 BT21 캐릭터로 교체했다. 오른편에는 BTS와 ARMY를 환영한다는 전광판 문구가 눈에 띈다. 정희원 기자

이같은 팬덤의 화력은 한국 관광의 고질적 난제인 ‘서울 집중 현상’을 해결할 핵심 열쇠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의 81.8%가 서울에 쏠리는 반면, 인천 방문율은 6.2%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애의 무대’ 앞에서는 수치가 요동쳤다.

 

이같은 통계가 나온 1년 뒤, 2024년 세븐틴의 인천 아시아드 공연 당시 외국인 관람객 비중은 단숨에 36%까지 치솟았다. 인근 상권 역시 긍정적 효과를 봤다. 잘 짜인 K팝 콘텐츠 하나가 수십억 원의 해외 광고보다 강력한 ‘지역 심폐소생’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이같은 흐름은 지속되고 있다. 25일 트립닷컴에 따르면 BTS 광화문 공연 일정 전후인 지난 19일부터 22일까지 해외에서 예약된 국내 호텔 건수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약 5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 집중됐던 수요가 지방으로 확산되는 흐름도 확인됐다. 서울뿐 아니라 대전(188%)과 부산(85%) 등의 숙소 예약률도 같은 기간 크게 증가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븐틴 굿즈 팝업을 둘러보는 캐럿. 이미 많은 제품들은 '솔드 아웃'이다. 정희원 기자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븐틴 굿즈 팝업을 둘러보는 캐럿. 이미 많은 제품들은 '솔드 아웃'이다. 정희원 기자

◆준비된 팬덤, 뒤처진 인프라... ‘지속 가능성’을 위한 숙제

 

테일러 스위프트의 투어가 미국 도시 경제를 살린다는 ‘스위프트노믹스’처럼 한국에선 K-팝 팬덤이 이같은 역할을 수행 중이다. ‘단순한 팬심’인줄 알았는데 거대한 문화 관광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제는 민간의 운에 기대는 단계를 넘어 팬덤이 만들어낸 에너지를 지속 가능한 산업 시스템으로 안착시키려는 국가적 노력이 필요한 때다.

 

정부도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2월 ‘제10차 국가관광전략회의’에서 주요 기획사들과 협업한 지역 연계 대형 공연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려면 하드웨어부터 갖춰야 한다. 수도권조차 인기 아티스트가 공연을 하면 따라올 수만 명을 수용할 공연장과 숙박 시설이 부족하다. 인프라가 전무한 소도시로 대형 공연을 유도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 시급하다.

 

정희원 기자 happy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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