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 긴장 장기화로 국제 유가가 오르자 정부가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동차 보험료 인하와 주유 할인 확대 등 금융권을 통한 생활 안정 대책이 핵심이다. 금융위원회는 보험사와 카드사 등 각 업계에 물가·유가 부담을 덜기 위한 구체적인 지원책을 마련하라고 요청하며 구체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지난 27일 손해보험사 임원들과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들을 긴급 소집해 고유가 대응을 위한 자동차보험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에서는 차량 5부제와 운행 제한 정책을 연계한 보험료 할인 및 환급 방안이 주요 논의사항으로 다뤄졌다. 금융당국은 차량 운행이 줄어들면 사고 발생 가능성도 낮아질 수 있는 만큼 이를 보험료 인하 또는 환급 방안에 반영하자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자동차보험 부문은 이미 손해율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상태이며, 지난해에도 7080억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보험료를 1%대 초중반으로 소폭 인상했지만 다시 인하 압박을 받게 되면서 부담이 커졌다는 입장이다. 특히 운행 감소가 실제 사고 감소로 이어질지 확실하지 않다는 점도 고민 요소로 꼽힌다.
카드업계 역시 주유비 부담 완화 방안을 요구받았다. 금융위는 기존 리터(ℓ)당 할인 혜택에 더해 일정 금액 이상 결제 시 추가 할인이나 캐시백을 제공하는 방식 등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예를 들어 일정 금액 이상 주유 시 리터당 추가 할인이나 결제 금액의 일정 비율을 돌려주는 방식이 제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카드업계의 주유 카드는 리터당 40~150원 수준으로, 기름값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체감 할인 효과가 떨어지는 상황이다. 최근 기름값이 2000원을 넘어서면서 100원 할인을 제공하는 카드라도 실질적인 할인 효과는 5%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할인 폭을 확대하거나 연회비 부담을 줄이는 방안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다만 카드사들 역시 비용 증가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금융권 전반에 걸쳐 고유가 대응 압박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는 유류 시장 질서 확립에도 강한 메시지를 내놨다. 27일 0시를 기해 석유 최고가격이 상향 조정되자 일부 주유소들이 이를 틈타 가격을 선제적으로 올리는 움직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전국 1만여 개 주유소의 가격 동향을 면밀히 점검하고 있다며, 제도 시행 직후 가격을 즉각 인상하는 행위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정책 취지를 악용해 과도한 이익을 취하는 사례로 판단될 경우 강력한 제재를 가하겠다는 경고다. 특히 공공성이 강조되는 알뜰주유소에 대해서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가격 안정에 모범을 보여야 할 주체가 과도한 가격 인상을 단행할 경우 즉각 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으로 시장 신뢰를 확보하겠다는 의도다.
정부는 보험·카드 등 금융권을 통해 소비자 부담을 줄이는 한편, 유류 시장의 불공정 행위를 차단하는 ‘투트랙’ 대응에 나선 모습이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논의를 바탕으로 중동 정세에 따른 고유가 상황에 대응할 종합적인 금융 지원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주희 기자 jh22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