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요 투자은행(IB)들이 우리나라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일제히 상향 조정했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고유가 충격이 본격화되면서, 오는 5월부터는 물가 상승률이 3%대를 돌파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관측도 나온다.
5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해외 주요 IB 8곳의 한국 물가 전망치(3월 말 기준)는 평균 2.4%로 한 달 새 0.4%p 급등했다. 이는 한국은행 전망치(2.2%)를 웃도는 수치로, 단기간 내 이례적으로 가파른 상향 조정이라는 평가다.
특히 JP모건과 씨티는 가장 높은 수치인 2.6%를 제시하며 경고 수위를 높였다. 바클리(1.9%→2.5%), 골드만삭스(1.9%→2.4%), 노무라(2.1%→2.4%) 등 대다수 IB가 눈높이를 상향 조정했으며, 물가 상승률을 1%대로 낙관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JP모건은 “중동발 에너지 가격 충격이 아직 데이터에 완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정부의 물가 안정화 조치가 어느 정도 효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중동 상황이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5∼9월에는 3%를 웃돌 것으로 예상한다. 그 이후의 전망은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경제 구조상 중동발 ‘에너지 쇼크’는 피하기 어려운 외생 변수다. 정부가 유류세 추가 인하와 품목별 특별관리 등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거세게 밀려오는 고유가 파고를 완전히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국제유가 상승분이 온전히 반영되지 않은 3월 물가지표에서는 정부의 관리 품목을 중심으로 정책 효과가 일부 확인됐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출고가가 인하된 밀가루 물가지수는 132.33으로 지난해 동월 대비 2.3%, 전월 대비 1.5% 하락했다. 상추·시금치·토마토 등 주요 농산물 역시 봄철 생산량 증가와 맞물려 하락세를 보였다.
석유류 물가는 9.9% 급등하며 전체 물가를 0.39%p 끌어올렸다. 경유(17.0%), 휘발유(8.0%), 등유(10.5%)가 모두 크게 올랐으나, 국제유가 상승 폭에 비하면 국내 소매 가격 오름폭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문제는 정부의 관리망 밖에 있는 ‘시차의 덫’이다. 국제유가 상승분이 국내 물가에 온전히 파급되는 데 보통 3~6개월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진짜 충격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정부 내부에서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세 단계에 걸쳐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먼저 1차로 에너지 품목 가격이 직접 오르고, 2차로는 이를 연료로 쓰는 운송·물류 부문 비용이 상승한다. 마지막 3차 단계에서는 공산품과 가공식품은 물론 축수산물과 외식 서비스 요금까지 전방위로 번지며 가계 경제에 광범위한 타격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주다솔 기자 givesol@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