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송의 세계] 골목마다 울려 퍼지는 선거송 전쟁, 60여년의 역사

(왼쪽)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대전 지역 후보들이 합동유세를 하고 있다. (오른쪽)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지역 후보들이 합동유세를 하고 있다. 뉴시스
(왼쪽)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대전 지역 후보들이 합동유세를 하고 있다. (오른쪽)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지역 후보들이 합동유세를 하고 있다. 뉴시스

#1일 서울 용산구 마포구 한 시장 앞, 유세차 한 대가 트로트 멜로디에 후보 이름을 얹은 노래를 틀기 시작했다. 장을 보던 60대 주부 김모 씨는 “노래가 자꾸 귀에 맴돌아 이름을 외우게 된다”고 말했다. 불과 몇 분 사이 지나가던 시민 서너 명이 무의식적으로 가사에 맞춰 고개를 끄덕였다. 선거송의 힘이다.

 

선거철이 돌아왔다. 유세차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멜로디가 골목을 채우고 지나가던 시민의 귀에 어느새 후보 이름이 박힌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각지 후보들의 선거송 경쟁은 절정에 달했다.

 

포스터나 안내 책자는 관심이 없으면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거리와 골목을 채우는 선거송은 의도하지 않아도 귀에 닿는다. 반복되는 가사와 흥겨운 리듬은 후보 이름을 자연스럽게 각인시킨다. 트로트부터 인기 가요, CM송까지 형태도 다양해진 선거송은 단순한 유세 음악을 넘어 선거 전략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았다.

 

◆귀에 박히는 선거송, 60년의 진화

 

국내 선거송의 시작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 당시 지지자들이 후보를 응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래를 개사해 부르기 시작했다. 조병옥 후보가 선거 도중 별세하자 지지자들이 영화 유정천리(1959) 주제가를 개사해 부른 사례가 초창기 선거송 문화의 대표적 장면으로 꼽힌다.

 

이후 선거송은 정치와 대중문화가 결합하며 빠르게 진화했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중가요를 활용한 유세 문화가 본격 등장했다.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는 군정종식가를 개사해 사용했고,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는 유세 현장에서 직접 베사메무초를 불러 화제를 모았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는 선거송 문화의 변곡점이다.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DJ DOC의 DOC와 춤을을 이니셜을 따 DJ와 춤을로 개사해 젊은 유권자를 파고들었다.

 

선거송이 이미지 정치의 무기로 자리잡은 결정적 장면은 2002년 대선이다. 노무현 후보가 직접 기타를 치며 상록수를 부르는 모습은 화려한 연출 대신 진정성을 택한 유세 방식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지역주의 타파라는 정치 행보와 언제나 푸른 상록수의 메시지가 맞물리며 선거송이 단순한 홍보 수단을 넘어설 수 있음을 증명했다.

 

지금까지도 선거송의 주류는 트로트다. 남녀노소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고 반복적인 멜로디가 강한 각인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60대 이상 유권자 비중이 높은 현실에서 각 정당과 후보들은 중장년층 친화적인 곡을 우선 선택한다. 여기에 젊은 층을 겨냥한 댄스곡과 밈 요소까지 더해지며 선거송은 점점 다양화되는 추세다.

여야 선거운동원들이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뉴시스
여야 선거운동원들이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뉴시스

◆멜로디에 가려진 정책

 

이면도 있다. 반복되는 확성기 유세와 높은 음량은 주민 피로감을 키우고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에는 선거 기간마다 소음 신고가 잇따른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중독성 강한 멜로디가 후보 이름은 각인시키지만 정작 정책과 공약은 지운다는 점이다. 귀는 사로잡았는데 유권자의 판단은 흐려진다.

 

선거송은 이제 단순한 유세 음악이 아니다. 시대마다 장르와 방식은 달라졌지만 목적은 하나다. 유권자가 기억하는 이름 한 줄, 그것이 한 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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