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종결되는 분위기지만 당장 국내 원유 수급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15일 미국과 이란이 종전협상을 타결함에 따라 사실상 100일 넘게 봉쇄됐던 호르무즈 해협이 조만간 개방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석유·천연가스 공급량의 약 20%를 차지하는 주요한 에너지·물류 수송로이지만 그동안 전쟁과 이에 따른 해상봉쇄로 제 역할을 못했던 이 해협이 개방되면 세계적 에너지·물류 이동에 숨통이 트이고 유가 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란 기대가 크다.
그러나 해협이 열린다고 해서 곧바로 국내로 들어오는 원유량이 늘어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우선 이란이 해협에 설치했다고 주장하는 기뢰가 문제다. 이 기뢰는 탐지가 쉽지 않아 제거 작업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아울러 기뢰가 제거돼 안전한 통항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중동에서 한국까지의 긴 항해 거리로 실제 원유를 도입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업계 관계자는 “해협이 개방된다고 해서 갑자기 많은 원유가 쏟아져 들어오진 않을 것”이라며 “회사마다 해협에 묶여 있는 배가 많지 않은 데다 새로 배를 보내서 원유를 들여오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당분간 도입선 다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도입량을 점진적으로 늘리며 원유 수급 전반에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간 정부와 업계도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대체 경로를 통해 물량 확보에 나서고, 비중동산 대체 원유 도입에 속도를 내는 등 공급망 다변화에 총력을 기울인 만큼 원유 공급 물량은 현재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오른 상태이기도 하다.
앞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2일 국무회의 보고에서 “5∼7월 원유는 전년 대비 86%, 나프타는 83%를 확보했다”며 “8월 원유 도입 예상 물량도 꾸준히 상승해 80% 중반에 도달할 전망”이라고 밝힌 바 있다.
천연가스 역시 지난 3월 카타르의 액화천연가스(LNG) 공급 불가항력 선언으로 우려가 있었으나 미국과 동남아시아 등을 통해 올해 연말까지 사용할 대체 물량을 이미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정부는 한국석유공사 9개 기지에 약 1억 배럴의 전략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의 경우 원유 수급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국내 하루 석유 소비량(280만 배럴)을 기준으로 한 달 이상을 버틸 수 있는 규모다.
이처럼 민관이 협력해 다변화된 원유 공급망 시스템을 이미 구축해 놓았기에 당장 호르무즈 해협이 개방되더라도 국내 원유 수급 체계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석유 최고가격제의 종료 시점에 관심이 쏠린다. 정부는 2월말 이번 전쟁이 발발하고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국내 기름값을 잡기 위해 3월 13일부터 최고가격제를 전격 시행, 3개월 넘게 시행 중이다.
당초 산업부는 출구 전략과 관련해 종전,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 국제유가 90달러대 안착 등 조건이 충족되면 제도를 종료할 수 있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그리고 이날 사실상 전쟁 종료 합의 속에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이 가시화되고, 이에 따라 국제유가가 80달러대로 가파르게 하락한 상황이다.
다만 정부는 아직은 불확실성이 여전한 만큼 진행 과정을 좀 더 지켜본 뒤에 석유 최고가격제 종료 시점을 논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양기욱 산업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오는 19일 종전 서명식과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 최고가격제를 종료했을 때 국내 석유가격에 대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를 당장 종료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간 석유 최고가격제를 통해 억눌러왔던 누적 인상 억제분이 일시에 반영되면 국내 유가가 폭등하며 물가에 미치는 충격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산업부는 지난달 21일 기준으로 휘발유의 경우 200원대 중후반의 인상 요인을 안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경유와 등유 역시 각각 300원대 중반, 400원대 중반의 누적된 인상 억제분이 남아 있다고 했다. 이후 국제유가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유종별 인상 억제분은 그때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는 게 산업부의 설명이다.
이날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과 업계 등에 따르면 6월 둘째 주(7∼11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지난주보다 ℓ당 0.5원 내린 2009.9원이었다. 경유 가격은 0.3원 하락한 2004.8원을 기록했다. 전쟁 발발 후 급등한 유가는 종전 가능성이 커진 최근 4주 연속 소폭 하락하면서 2000원대에서 횡보 중이다.
결국 오는 18일 발표될 7차 석유 최고가격은 일단 현행대로 유지된 뒤 점진적으로 제도 폐지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 최고가격제가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을 낮추는 역할을 하는 만큼 국내 물가 안정화 징후가 나타난 이후에 제도 종료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편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 장기화에 따른 정유업계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고시 제정을 이번 주 내에 마무리할 예정이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