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로 추진하는 3대 메가 프로젝트의 핵심은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트 사업이다. 여기에 SK와 삼성전자, 앰코가 총 896조원을 투자한다. 전력과 용수 등 인프라를 구축하고 행정절차를 얼마나 빠르게 진행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할 핵심 요소로 꼽힌다. 실제로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2019년 2월 투자가 결정됐지만 토지보상, 전력 문제 등으로 주민들과 갈등을 빚다 6년 만에 첫 삽을 떴다. 야권에서는 호남에 투자가 집중된 점과 낙후된 인프라 문제를 들어 반기를 들고 있다.
세간의 우려에 대해 전문가들은 전세계적인 인공지능(AI) 광풍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AI 반도체 분야에서 톱티어를 지키기 위한 골든타임에 돌입한 만큼 투자는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전력과 용수, 인력은 정부 지원으로 극복 가능하며 이번 투자로 AI 패권 확보뿐 아니라 지방 균형 발전까지 해결할 기회라고 봤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한국은 반도체 초강국으로 입지를 굳혀야 하는 상황”이라며 “전력과 용수, 인력 모두 정부 지원을 더하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 전력의 경우 재생에너지가 풍부하고 한빛원자력, LNG발전소로 보완이 가능하다고 봤다. 또 서남권에는 댐과 강이 있어 수자원에는 문제가 없으므로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초순수를 확보하기 위한 인프라만 구축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필요한 인력도 공장 구축이 완료된 4~5년 후에 필요하기 때문에 산업 협력과 계약학과 개설 등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는 게 이 교수의 시각이다.
서남권의 경우 지역 주민들의 환영 분위기가 높은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교수는 “지자체에 대한 반발이 용인에 비해 적을 것”이라며 “인허가 등 행정절차와 전력, 용수를 확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이 부분에서 (지역민 분위기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력한다면 인프라 구축에 2~3년, 공장 외관 건설에 1~2년, 장비 구축 및 테스트에 1~2년이 소요되면서 완성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이 교수는 “서남권 메가 사업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만 가는 게 아니라 관련된 협력사도 함께 내려가서 반도체 생태계를 만드는 거대 프로젝트다. 소부장 기업이나 설계 기업까지 여러 기업들이 동참하는 것”이라며 대만 반도체 기업 TSMC의 ‘가오슝 모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TSMC는 대만 남부 가오슝 지역으로 반도체 생산 거점을 확대하며 수요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교수는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도 해당 모델의 장점을 벤치마킹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박영준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명예교수는 AI 광풍 속에 메모리가 가장 중요한 부품으로 부상한 점을 언급하며 시간 싸움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박 교수는 “한국은 전 세계 메모리의 70~80%를 공급하는 정상급 위치에 있다”며 “지금의 호황을 앞으로도 주도해 나갈 수 있느냐는 관점에서 보면 이번 투자는 당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주도 사업으로서 당위성이 있느냐에 대해서도 “전력, 용수 등 인프라를 해결해야 되기 때문에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맞다”며 “TSMC도 미국과 일본 정부에서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에 생산거점을 지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아울러 “지난 40년간 반도체가 한국을 일류 국가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면 이번 투자로 지방 공동화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자리와 의료 인프라 등의 수도권 쏠림으로 지방은 소멸 위기에 봉착한 상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동탄을 꼽았다. 그는 “십 수년 전만해도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 판교 이남으로는 내려가지 않겠다는 인식이 있었다. 판교가 마지노선이었던 셈”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반도체 거점이 있는 동탄과 평택으로 분산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호남에 반도체 클러스터가 설립되면 더 살기 좋은 지역이 되고 젊은이들이 양질의 일자리와 거주 시설을 향해 자연스럽게 몰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