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진료를 차단하고 만성 적자를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 속에 5세대 실손의료보험이 출시됐지만, 첫달 성적표는 기대 이하로 부진했다. 비중증 비급여 자기부담률이 최고 50%까지 상향되는 등 보장이 축소되면서 기존 가입자들의 전환 동력이 약화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다만 정부가 전환 활성화를 위한 당근책을 예고한 가운데, 이러한 방안이 세대교체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5세대 실손보험 출시 후 한 달간 기존 세대에서 5세대로 갈아탄 계약 건수는 7000여 건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현재 실손보험 가입자가 4000만명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의 초기 반응은 사실상 ‘냉담’에 가깝다는 평가다.
그동안 실손보험은 의료 이용 행태 변화에 맞춰 제도를 개편해왔다. 자기부담금이 없어 사실상 전액을 보장하던 1세대(2009년 이전)를 시작으로, 2세대(2009~2017년)는 모든 보험사의 보장을 표준화하고 비급여 자기부담금(최대 20%)을 처음 책정했다. 3세대(2017년)는 도수치료 등 과잉 진료 우려가 큰 항목을 특약으로 분리하고 자기부담율을 높였으며, 4세대(2021년)에 이르러서는 전체 비급여를 특약화하고 이용량에 따라 보험료를 할인·할증하는 ‘보험료 차등제’를 도입했다.
◆5세대, 가격 내린 만큼 보장도 축소
새롭게 등장한 5세대는 앞선 4세대의 틀 위에 ‘보험료 인하’에 초점을 맞췄다. 40대 남성 기준 월 1만7000원, 60대 여성 기준 월 4만원 수준으로 4세대보다 보험료가 약 30% 저렴하다. 여기에 임신·출산 등 관련 급여 의료비 등 보장 대상에 새로 포함해 사각지대도 좁혔다. 기존 실손 상품의 가격에 부담을 느끼거나 필수 의료 중심의 보장을 원하는 소비자에게는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시장의 반응이 이처럼 냉담한 이유는 낮아진 보험료만큼 보장 혜택 역시 위축됐기 때문이다. 5세대는 암 등 중증 질환 비급여는 기존 수준을 유지하는 대신 비중증 비급여 보상 한도를 대폭 축소했다. 실제 5세대 실손보험에서 비중증 비급여의 환자 본인부담률은 무려 50%까지 상향 조정됐다. 여기에 실손 적자의 주범으로 꼽히던 도수치료나 미등재 신의료기술 등은 보장 한도가 줄어들거나 아예 보장 대상에서 제외됐다.
급여 항목 역시 입원은 현행 20%의 자부담을 유지해 중증 환자의 부담을 최소화했으나, 통원 치료는 건강보험 본인부담률과 연동돼 환자가 실제로 내야 하는 돈이 늘어났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보험료 조금 아끼려다 정작 질병이 발생했을 때 치료비 부담이 더 커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번지며 5세대 실손이 시장에서 외면받는 배경이다.
◆4세대 만기 시작…1·2세대는 요지부동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실손보험 최초로 5년 만기 재가입 주기가 도래한 4세대 실손이 이달부터 본격적인 전환 주기에 접어든다. 지난 2021년 7월 출시 첫 달에만 7만1191건이 판매된 데 이어, 지난달 기준 605만건에 달하는 전체 4세대 계약이 향후 5년간 순차적으로 만기를 맞아 5세대로 이동할 예정이다.
다만 만기 주기가 도래해 자동으로 전환되는 4세대와 달리, 계약 유지가 보장된 1·2세대 가입자들은 자발적인 선택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 최대 난제로 꼽힌다.
이에 정부와 보험업계는 얼어붙은 1·2세대 가입자들의 셈법을 흔들기 위해 강력한 유인책을 꺼내 들었다. 당국은 오는 11월부터 1·2세대 가입자가 5세대로 갈아탈 경우 보험료를 3년간 50% 할인해주는 ‘계약전환 할인 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기존 계약을 유지하더라도 불필요한 보장을 제외해 보험료를 낮춰주는 ‘선택형 할인특약’을 병행하기로 했다.
현재 과도한 의료쇼핑과 과잉진료로 인한 적자 규모가 매년 불어나는 상황에서, 정부의 유인책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전체 실손 가입자의 절반 이상이자, 실손 적자의 주요 원인인 1·2세대 가입자를 흡수하지 못한다면, 의무 전환되는 4세대 물량만으로는 5세대 실손의 시장 안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다솔 기자 givesol@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