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을 휩쓴 K-팝과 K-콘텐츠의 열풍이 이제 문화적 현상을 넘어 산업의 비즈니스 지형도를 바꾸는 거대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존 굿즈 시장의 패러다임을 깨고 ‘배려’라는 정서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해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 16일 MBC every1 예능 프로그램 ‘호텔도깨비’의 ‘곤이’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전성곤은 아웃도어·가방 전문 브랜드 ‘BLACKBRIAR(블랙브라이어)’의 도정구 디렉터를 파트너로 맞이해 기획한 새로운 개념의 굿즈 플랫폼을 최근 SNS를 통해 전격 공개했다.
이들이 선보인 프로젝트는 일명 ‘레터백(Letter Bag)’으로 불리는 기능성 플랫폼 백이다. K-팝 팬들이 공연 관람을 위해 야외에서 장시간 대기한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평소에는 가방으로 쓰이다가 언제 어디서든 ‘그라운드 체어’로 변형해 앉을 수 있도록 실용적으로 설계됐다. 콘서트나 페스티벌은 물론 스포츠 경기 관람, 여행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환경에서 활용이 가능하다.
현재 국내외 K-팝 팬덤의 소비시장 규모는 약 18조원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캐릭터, 브랜드 라이선스 IP 협업 및 스포츠 시장까지 연계될 경우 전체 확산 규모는 약 500조원대 이르는 초대형 시장이다. 그러나 그간의 팬덤 굿즈 시장은 키링, 인형, 장바구니 등 획일화되고 단순 소장용 아이템 중심에 머물러 있었다.
‘레터백’은 이러한 시장에 새로운 카테고리를 추가하며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한다. 단순히 편리한 기능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팬들이 먹고 마신 흔적을 스스로 정리하고 주변을 배려하며 떠나는 ‘행동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자신이 사용한 공간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한국 특유의 정서를 글로벌 팬덤 문화에 이식하고 여기에 아티스트가 팬들을 위해 참여할 수 있는 양방향 배려 심리를 더했다.
업계 전문가들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독점이 아닌 공유를 선택한 ‘플랫폼형 IP 전략’이다. 하나의 브랜드가 시장을 독식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아티스트, 엔터테인먼트사, 스포츠 구단, 캐릭터 라이선스 등 각자의 IP가 ‘레터백’이라는 표준화된 플랫폼 안에서 상생하고 성장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또 다른 핵심 경쟁력은 압도적인 실행 속도에 있다. 전성곤 디렉터와 도정구 디렉터는 단 두 명의 인력으로 아이디어 기획, 구조 개발, 디자인, 파트너십 협의, 생산 및 유통 체계 구축에 이르는 전 과정을 단 7주 만에 완료했다. 브랜드 철학과 콘텐츠 IP 전략을 설계한 전성곤 디렉터의 기획력과, BLACKBRIAR의 가방·캐리어 제조 기술 및 생산 노하우를 보유한 도정구 디렉터의 기술력이 결합해 완벽한 시너지를 낸 결과다.
콘서트 현장의 작은 불편함과 배려라는 따뜻한 정서에서 출발한 아이디어 하나가 패션, 아웃도어,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거대한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로 진화하고 있다. 효율성과 고도화만을 쫓는 현대 비즈니스 사회에서 문화를 파는 스토리텔러들이 만들어낼 새로운 시장의 향방에 귀추가 주목된다.
한준호 기자 tongil7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