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마의 5%를 돌파했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수준을 넘어서며 19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자 글로벌 주식·채권·외환 시장 전반이 요동치는 양상이다. 통화 긴축 장기화와 수급 불안이 겹친 가운데 미국발 금리 충격은 아시아와 유럽 등 주요국으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다.
16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5.04%까지 상승했다가 이후 4.99% 수준으로 하락했다. 10년물 금리는 전날 장중 5%를 돌파한 데 이어 하루 만에 고점을 높이는 등 이틀째 상승세를 보였다. 상승 폭을 일부 반납했지만, 종가 기준으로도 여전히 19년 만에 가장 높다. 30년물 금리는 장중 5.401%까지 올랐으며 이 역시 2007년 6월 이후 최고치다.
◆유가 급등에 수급 불균형 겹쳐…‘트리플 악재’ 직격탄
이번 미 국채 금리 급등은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와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금리 장기화 기조, 구조적 채권 수급 악화가 맞물린 결과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선을 위협받는 등 에너지발 공급 측면의 물가 상방 압력이 다시 거세졌다. 미국의 고용과 소비 등 실물 지표가 견조세를 유지하면서 시장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감은 사실상 소멸했다.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미 연방정부의 국채 발행 물량 급증도 시장의 소화 한계를 드러냈다.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회사채 발행까지 겹치며 시장 내 유동성 흡수가 가속화됐다. 채권 공급 과잉 국면에서 투자자들이 장기물 보유에 따른 기간 프리미엄을 추가로 요구하면서 장기물 금리 상승을 더욱 부채질했다.
◆글로벌 국채 ‘연쇄 쇼크’…韓도 고환율·자본유출 ‘비상’
미국발 금리 충격은 전 세계 금융시장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특히 일본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장중 연 3.035%까지 치솟으며 1996년 8월 이후 약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 정상화 흐름과 미·일 간 금리 격차 확대, 엔화 약세 방어를 위한 추가 긴축 전망이 맞물린 결과다. 유럽 주요국 국채 금리 역시 동반 급등세다. 독일(연 3.54%), 프랑스(연 4.48%), 영국(연 5.3%대)의 국채 금리가 일제히 치솟으며 글로벌 장기 자금 조달 여건이 급격히 경색되는 양상이다.
한국 금융시장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미 국채 금리 급등이 곧바로 달러화 강세를 자극하면서 원·달러 환율 상방 압력을 높이는 형국이다. 고환율 국면이 장기화하면 수입 물가를 자극해 간신히 둔화 흐름을 타던 국내 소비자물가 안정 기조를 흔들 수 있다.
자본 유출 압력과 내수 경색 우려도 커졌다. 한·미 간 금리 역전 폭이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안전자산인 미 국채 수익률마저 치솟자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증시 및 채권 이탈 경계감이 짙어지고 있다. 여기에 국내 국고채 금리마저 동반 상승하면서 기업의 회사채 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시차를 두고 가계 대출 금리 인상 압력으로 이어져 내수 회복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베선트 미 재무 장관 “글로벌 이슈 탓” 진화했지만 역부족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시장 불안 진화에 나섰다. 베선트 장관은 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미 국채 금리 급등세에 대해 “특정 국가의 내부 요인이 아닌 글로벌 거시경제 환경의 복합적 변화에 따른 이슈”라고 선을 그었다.
미 재무부가 장기 국채 조기 환매(바이백) 규모를 확대하는 등 유동성 공급 대책을 내놨으나 시장 반응은 미온적이다. 베선트 장관은 “미국 국채 시장은 주요 선진국 중 가장 깊고 유동성이 풍부한 시장”이라며 시장의 과도한 불안 심리를 경계했으나, 구조적인 재정적자 우려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