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전통 제조업 강국’인 독일과 일본의 흑자를 합친 규모를 넘어섰다. 세 나라 통계 비교가 가능한 1996년 이후 처음이다. 반도체 가격 급등에 힘입은 결과로 올해 연간 흑자가 5000억달러에 육박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의 경상흑자 증가폭이 전 세계 190개국 중 1위에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25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IMF 통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1166억3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주요 36개국 가운데 중국(1937억2000만달러)에 이어 2위다. 독일(522억8000만달러)과 일본(506억2000만달러)의 흑자를 합한 약 1029억달러보다 137억달러 많다. 한국의 흑자는 중국의 60.2% 수준으로 1년 전(22.7%)보다 격차를 크게 좁혔다. 상반기 기준으로도 한국은 1910억1000만달러로 중국에 이어 2위였다.
한국의 2분기 흑자는 1년 전(283억9000만달러)의 4.1배로 불었다. 같은 기간 독일과 일본의 흑자 증가율은 각각 11.9%, 5.0%에 그쳤다. 독일과의 흑자 격차(643억5000만달러)는 1976년 이후, 일본과의 격차(660억1000만달러)는 1996년 이후 가장 컸다. 7~8월에도 한국의 흑자(881억9000만달러)가 독일·일본 합계(808억2000만달러)를 앞섰다.
흑자 행진을 이끈 것은 반도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분기 반도체 수출은 1138억90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181.6% 늘었다. 3분기에는 1480억2000만달러로 218.7% 증가했다. 물량보다 메모리 가격 상승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IMF는 10월 세계경제전망에서 올해 한국의 경상흑자를 약 4219억달러로 예상했다. 190개국 중 중국에 이어 2위로, 지난해보다 세 계단 올라선다. 흑자 증가폭(2988억9000만달러)은 중국의 2.15배로 세계 1위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흑자 비율은 18.8%로 1980년 이후 최고치다. GDP 1조달러 이상 22개국 가운데서는 대만에 이어 2위로, 독일(4.5%)과 일본(4.6%)을 크게 웃돈다. IMF는 2027~2028년에도 4000억달러대 흑자가 이어지다가 2029년 2956억6000만달러, 2031년 1774억9000만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한은은 지난 22일 올해 흑자가 기존 전망치(4500억달러)를 넘어 5000억달러에 근접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해 기록한 사상 최대치(1231억달러)의 4배 수준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반도체 시장에 집중된 흑자 구조가 지속 가능한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가 둔화하거나 미국과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이 확대될 경우 수출 증가세가 꺾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산업의 수출 실적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내수와 서비스업 경쟁력을 강화해 외부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