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김범석 쿠팡 Inc 의장을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한 것은 사실상 쿠팡에 대한 규제 강화를 의미하는 것이라 한국과 미국 관계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양국이 쿠팡의 정보유출 조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중인데다 최근 대북 정보 공유 제한 문제도 불거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29일 쿠팡의 동일인을 쿠팡 법인에서 김 의장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포함한 대기업집단 지정 결과를 발표했다. 그동안 동일인 지정에 반대한 쿠팡은 즉각 반발했다.
공정위가 동일인 지정 사유로 제기한 사익편취 우려 등을 부정하면서 향후 행정소송을 통해 이 문제를 다투겠다고 밝힌 쿠팡은 한국 정부에 대한 정면 대응 기조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모양새다. 아울러 쿠팡이 미국 행정부와 의회를 향한 로비를 강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쿠팡 문제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한미 간에 갈등 현안으로 부상했으며 특히 최근에는 외교·안보 협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해졌다. 쿠팡은 한국에서 대부분 사업을 펼치지만 최상단 지배회사인 쿠팡Inc가 미국법에 따라 설립된 법인이며 미국 증시에 상장돼 모기업 기준 미국 기업으로 분류된다.
앞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3일 “쿠팡은 기업의 문제인데 이 문제가 한미 간 안보 협의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정부는 쿠팡의 문제는 법적 절차대로 진행하고 안보 협상은 안보 협상대로 진전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미국과 논의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 미국 측은 쿠팡에 대한 정보 유출 조사 등 일련의 조치에 대해 자국 기업 차별 소지가 있다며 우려를 제기해왔다. 쿠팡이라는 개별 기업을 넘어 ‘미국 기업 차별 금지’라는 기조와 맞물려 확산하는 양상이다. 지난 21일에는 미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54명이 쿠팡 같은 미국 기업 차별을 중단하라는 서한을 강경화 주미대사에게 발송하는 등 압박하고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등 범여권 의원 90여 명은 지난 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들의 서한에 대해 “주권국가의 법치 질서를 근본부터 흔드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이에 대한 항의 서한을 주한 미대사관에 전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도 같은 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서한을 보낸 것 등을 거론하며 “차별이 아니라 법 위반에 대한 동등한 적용이었다”며 “법치주의와 주권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한 의장은 “이는 미국 기업은 외국에서도 자국법보다 느슨한 기준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논리에 귀결된다. 그러나 이는 법치주의와 주권 평등, FTA(자유무역협정) 정신 모두에 위배된다”고 꼬집었다.
한국 정부는 쿠팡 관련 조사와 동일인 지정 등은 모두 국내법과 적법 절차에 따라 이뤄지고 있으며 국적과 무관하게 비차별적으로 적용된다는 태도를 드러냈다. 이번 김범석 의장의 동일인 지정도 마찬가지다.
다만 두 나라 간 입장차가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외교부는 미 의회와 행정부를 상대로 관련 사안을 설명하는 등 아웃리치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나 설득이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쿠팡 문제가 핵추진잠수함과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연료봉 재처리 등 원자력 협력에 대한 한미 협상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현재 대미 투자와 미국이 문제 삼은 비관세 장벽에 대한 통상 당국 간의 협의는 미국이 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수준에서 꾸준히 이뤄지고 있지만 쿠팡 문제가 외교·안보 협의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일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쿠팡 이슈가 한미 간 안보 논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관리할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안보 논의는 쿠팡과 별개로 진전돼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미국과도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