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비즈=안재성 기자]날이 갈수록 전세 대란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임대차시장에 “실거주당한다”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려 하면, 임대인이 부모나 자녀 등의 실거주를 내세워 무산시켜버리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최근 임대인들은 ‘실거주’ 운운하면서 임차인에게 전월세를 시세대로 올려줄 것을 강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차인들로서는 사실상 여기에 대항할 무기가 없는 셈이라 심각한 주거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17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2월 첫째주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29% 올라 66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도 0.14% 뛰었다. 서울은 벌써 76주 연속 오름세다.
이처럼 가파른 전셋값 폭등 등 전세 대란에는 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 상한제, 전월세 신고제 등 임대차3법의 영향이 지대한 것으로 분석된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임대인들이 4년치 인상분을 한꺼번에 반영하다보니 전셋값이 폭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시에 전세의 월세 전환이 가파르게 이뤄지면서 전세 매물이 고갈된 부분도 전셋값 폭등에 한 몫 했다”고 진단했다.
임병철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계절적 비수기임에도 매물 품귀 현상으로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특히 내년에는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올해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들어 전세 시장의 불안 요인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사실상 계약갱신청구권이나 전월세 상한이 의미를 잃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대차3법에 따르면, 임차인은 기존 2년의 전월세 계약이 만료돼도 새롭게 2년 더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으며, 임차료 상한폭도 5%로 제한된다.
다만 임대인 본인 또는 직계 존·비속이 실거주할 경우에는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를 거절할 수 있다. 최근 이 실거주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임대인이 늘었다는 것이 부동산업계의 분석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근래 다수의 임대인들이 전세 보증금을 시세대로 올려주거나 월세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임차인이 임대차3법을 내세워 이를 거절하면, 즉시 실거주를 선언해 나가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임대인의 실거주에는 본인이나 부모뿐 아니라 아직 학생인 자녀까지 동원된다”며 “이들 중 태반이 전입신고만 해둔 뒤 실제 거주는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단 실거주를 내세워서 기존 세입자만 내보내려는 것이다. 그 뒤 시세대로 전월세를 크게 올려 새로운 세입자를 받으면, 설령 전 세입자에게 손해배상금을 물어주는 사태가 생기더라도 이익이라는 판단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재건축 단지 등은 아예 빈 집으로 내버려두는 집도 여러 곳”이라며 “실거주 기간 2년을 채우려는 목적인 듯 하다”고 전했다.
때문에 임차인들의 주거 불안은 심각한 상태다. 기껏 임대차3법이 생겼음에도 임차인들은 자신의 권리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임차인 A씨는 “전세 보증금을 그대로 둔 채 월세 100만원을 덧붙여 반전세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는 임대인에게 법대로 보증금만 5% 올려주겠다고 제안하자 즉시 아들을 실거주시키겠다는 답변으로 돌아왔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임대인의 아들은 아직 대학생이라 분가할 때가 아니다”며 “무슨 의도인지 뻔히 아는데도 대항할 방법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임차인 B씨는 “내년 6월에 재계약인데, 혹여나 임대차3법 운운했다가 실거주당할까 봐 겁난다”며 “요새 전세 매물조차 없어서 실거주만 피할 수 있다면, 임대인이 원하는 대로 맞춰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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