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비즈=박정환 기자] 대형 건설사들의 ‘프리미엄’ 경쟁에 불이 붙었다. 연초부터 인공지능(AI) 같은 첨단기술과 특화설계, 세련된 외관 디자인이 어우러진 프리미엄 아파트를 선보이며 브랜드 고급화·차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줄어든 ‘파이’를 차지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 전략의 하나다.
하지만 일각에선 건설사들의 고급화 경쟁이 ‘주거 양극화’를 부추긴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자사의 기존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려 자칫 ‘제 살 깎아먹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8일 건설·부동산업계에 따르면 현재 업계 내 고급화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기업은 현대건설이다. 현대건설은 올해 프리미엄 주거 브랜드인 ‘디에이치(THE H)’ 단지의 입주를 본격화하며 브랜드 가치 높이기에 나서고 있다. 오는 6월엔 ‘디에이치 라클라스(삼호가든3차 재건축)’, 8월엔 ‘디에이치 자이 개포(개포주공8단지 재건축)’의 입주가 예정돼 있다. ‘디에이치 라클라스’는 강남 지역 최초 비정형(유선형) 외관·문주와 갤러리가든, ‘디에이치 자이 개포’는 층별 돌출형 발코니와 강남 유일의 실내 조경트랙이 특징이다.
디에이치는 ‘THE’와 현대(Hyundai), 하이엔드(High-end·고급), 하이소사이어티(High Society·상류사회)의 의미를 지닌 ‘H’를 결합한 것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디에이치는 같은 브랜드라도 각각 차별화된 ‘최초, 최대, 유일’의 디자인과 설계가 적용된다는 점에서 타 건설사 브랜드 아파트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고 말했다.
다른 건설사들도 이에 질세라 브랜드 고급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DL이앤씨(옛 대림산업)는 프리미엄 브랜드인 ‘아크로(ACRO)’를 기존 브랜드인 e편한세상과 분리해 고급화 이미지 굳히기에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아크로의 BI 디자인에서 e편한세상과 공통으로 사용했던 오렌지 구름 심볼을 떼어내기도 했다. 아크로는 ‘가장 높은, 넓은’의 의미를 가진 프랑스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아크로리버파크’는 국내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중 하나로 꼽힌다. 이밖에 롯데건설은 ‘롯데캐슬’의 상위 브랜드인 ‘르엘(LE-EL)’, 한화건설은 ‘포레나(FORENA)’, 호반건설과 대우건설은 ‘써밋(SUMMIT)’을 프리미엄 브랜드로 밀고 있다.
이처럼 건설사들이 고급화에 매달리는 것은 향후 수주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상징성이 큰 강남이나 용산 지역은 아무래도 고소득층 조합원의 비율이 높은데, 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면 고급화 전략은 선택 아닌 필수”라며 “특히 건설사들이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 2010년대 중반부터 프리미엄 경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건설사들의 고급화 경쟁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주거 양극화가 점차 심화하는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주택 공급’이라는 사회적 책임은 등한시하고 돈이 되는 일부 수요층 공략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고급화 전략에 따른 분양가 상승의 영향으로 부모의 도움 없이는 브랜드 아파트 입주가 힘든 젊은층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첨단기술과 특화설계가 적용되면 그만큼 분양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실수요자들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브랜드 아파트 거주민들의 불만도 적잖다. 건설사들의 프리미엄 브랜드 편애로 사실상 기존 브랜드는 찬밥 신세가 됐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e편한세상’ 아파트에 거주하는 A 씨는 “입주할 때만 해도 고급 브랜드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아크로’가 나오면서 괜히 저가 브랜드 아파트가 된 것 같고, 장기적으로 집값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건설업계 내부에서도 양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중소 건설사 관계자는 “메이저 건설사들의 고급 아파트 경쟁으로 실수요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지역·중소 건설사들이 수주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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