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비즈=박정환 기자] 건설사들이 ‘산업재해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쓴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망사고 발생 때마다 한 목소리로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을 외쳤지만 매년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며 공염불에 그쳤다.
하지만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중대재해기업처벌 제정을 계기로 건설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1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대형 건설사들이 안전한 현장 만들기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기업 브랜드 가치와 고객 신뢰도 향상을 목표로 보여주기 식이 아닌 실제 건설현장에 적용 가능한 산재 예방 시스템 구축에 나선 것이다.
지금까지는 인공지능(AI), 드론,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을 활용한 기술적 안전관리에 치중했다면 최근 트렌드는 현장 근로자들에게 능동적인 위험 작업 중단권을 부여하는 방식이 특징이다.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는 것은 삼성물산과 포스코건설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국내외 현장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을 전면 보장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규정하는 ‘급박한 위험’이 아니더라도 근로자가 안전하지 않은 환경이나 상황이라고 판단할 경우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삼성물산은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로 공사가 중단될 경우 협력사의 손실을 보전해준다. 이는 공사계약에도 반영된다. 아울러 작업중지권 행사로 현장의 위험요소를 발견 및 제거하는 데 기여한 근로자에게는 인센티브를 지급할 계획이다.
포스코건설은 ‘안전신문고’ 제도를 신설하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이 제도는 근로자가 현장에서 불안전한 상태를 목격하거나 불안전한 작업을 요구받을 경우 이를 회사 측에 신고할 수 있다.
안전시설이 미비하거나 불안전한 상황이 발생해 공사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근로자가 작업 중지를 요청하는 위험작업 거부권도 행사할 수 있다.
현장 곳곳에 CCTV도 설치하고 있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올해 1분기 내 CCTV 약 4000대를 전 현장에 추가 설치해 현장 사각지대를 제로화하고,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안전 기술을 확대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술적 진보도 주목할 만하다. 현대건설은 건설현장에서 ‘재해 예측 AI’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작업 당일 예상되는 재해위험 정보를 제공해 선제적 안전관리가 가능하다.
회사 측이 10년간 수행해온 토목, 건축, 플랜트 등 전체 프로젝트에서 수집된 3900만건 이상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발됐다. IoT 기반 현장 안전관리 시스템인 ‘하이오스(HIoS)’도 운영하고 있다.
삼성물산도 각종 센서와 IoT, 드론, 클라우드로 현장 데이터를 축적해 사고·위험도 등을 예측, 관리하는 통합건설 안전관리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밖에 대우건설은 원격 드론관제시스템, GS건설은 4족 보행 로봇인 ‘스팟(SPOT)’을 건설현장 내 안전 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건설사들이 너도나도 ‘안전 최우선’을 부르짖는 이유로는 중대재해법이 꼽힌다.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될 중대재해법에 따르면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사고 발생 시 사업주는 모든 책임을 지고 1년 이상 징역형이나, 10억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아울러 현장에서 사망사고 발생 시 사업장은 물론 건설사 본사도 고용노동부의 안전감독을 받게 된다.
최근엔 이원우 현대건설 대표, 우무현 GS건설 대표, 한성희 포스코건설 대표 등 메이저 건설사 CEO들이 산재 사망사고 이슈로 국회 청문회에 소환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은 사업주 처벌만 강화하는 등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많지만 업계의 고질적 병폐인 산재 문제를 되짚어보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며 “ESG 경영 기조 속에서 ‘안전’은 건설사 브랜드 이미지를 좌우하는 핵심 가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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