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비즈=박정환 기자] ‘위드 코로나’를 맞아 전 산업계가 재도약의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이중삼중의 ‘규제 지옥’이 기업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특히 친환경 등 신산업 진출이 각종 규제에 의해 발목이 잡히면서 국가 산업 경쟁력 약화와 해외 기업의 국내 시장 잠식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신사업 진출을 계획 중인 기업들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것은 바로 규제다.
기업 성장의 핵심은 신사업 진출인데, 여러 규제로 인해 적잖은 기업이 사업 지연과 사업 축소·변경, 비용 부담 가중 등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아예 사업을 포기하는 기업도 적잖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신산업에 진출했거나 진출할 계획이 있는 기업 244개사를 대상으로 ‘신산업 규제환경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10곳 중 7곳(71.8%)이 규제로 인한 사업 지연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은 규제로 인해 ‘사업축소·변경’(37.9%), ‘추가비용 발생’(34.7%) 등의 문제도 겪었고 아예 사업을 포기했다는 응답도 12.1%를 차지했다.
정부의 전방위적 규제는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유통업계에선 ‘퀵커머스’( Quick Commerce: 즉시 배송) 규제가 가장 큰 화두로 떠올랐다.
퀵커머스는 고객이 상품을 주문하면 15~60분 안에 상품을 배송해주는 즉시배송 서비스를 의미한다. 1인 가구와 소량상품 주문이 급증함에 따라 퀵커머스 시장은 2025년 5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쿠팡 등 배달플랫폼 업체는 물론 현대백화점, GS리테일, 롯데쇼핑, 홈플러스 등 유통 대기업들도 퀵커머스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데 정부는 이를 골목상권 침해로 보고 규제안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한 상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퀵커머스를 규제한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골목상권을 이용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며 “퀵커머스 규제는 유통 기업들의 혁신 서비스를 저해하는 것은 물론 소비자들의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조치”라고 말했다.
기업 관계자들은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아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려면 특히 대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 해소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현행 법령상 기업규모별로 차등 적용하는 ‘대기업차별규제’는 48개 법령에 275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9년 8월 기준 188개 대비 46.3%(87개) 늘어난 수치다.
기업이 성장해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적용가능한 규제의 개수가 급증한다.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지정되면 67개 규제,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지정되면 58개의 규제가 추가로 적용된다.
대기업에 집중된 규제는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4월 전경련이 기업과 관련한 제도경쟁력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OECD 37개국 중 26위로 나타났다. 분야별로는 노동분야 28위, 조세분야 26위, 규제분야 25위, 정책효율성 23위, 혁신분야 19위를 기록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요즘 ESG(기업·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대세가 되면서 국내 대기업들의 친환경 사업 진출이 늘고 있지만 각종 규제에 막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국내 기업들의 친환경 시장 선점을 어려워질 것이고, 나아가 해외 기업의 국내 시장 잠식도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대기업의 시장 진출을 무조건 규제하는 것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정부는 중소기업 판로 확보를 목적으로 ▲중소기업간 경쟁품목 ▲공공 소프트웨어(SW) 대기업 참여 제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규제 등을 실시해 특정 부문에 대한 대기업의 진출을 규제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선 규모를 기준으로 한 진입 규제가 신산업 분야의 외국산 점유율을 높이고 수출을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분석한 결과 중소기업 간 경쟁품목으로 지정된 3D프린터의 경우 기술 수준이 미국 대비 67.5% 정도로 중국·일본(80%), 유럽(99.5%)에 비해 격차가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의 기술 부족은 외국산 수입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3D프린터 분야의 중국산 수입은 2017년 569만 달러에서 지난해 1023만4000달러로 약 80% 증가했다. 현재 3D프린터 시장의 국산화 비중은 46% 정도에 그친다.
또 중소기업 비중이 90%가 넘는 드론산업도 핵심부품의 외국산 의존도가 높고 기술력이 부족해 국산화율이 50%에 못 미치는 실정이다.
장석인 산업기술대 교수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술‧제품‧서비스를 개발하는 기업 입장에서 법에 나열된 것만 허용하는 현행 포지티브(Positive) 규제체계가 가장 큰 장애물”이라며 “기업의 신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사업을 벌일 수 있는 규제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pjh121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