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통증 없이 암세포만 정밀 타격… 꿈의 ‘중입자치료’ 시대 활짝

연세의료원 치료센터 국내 첫 선
고정·회전형 치료기 2대 도입
빛의 70% 속도로 암세포 파괴
췌장암 등 3대 난치암 생존율↑
이르면 내년 4월부터 본격 가동

중입자치료기 가속기실. 사진=정희원 기자

[정희원 기자] 한국에 방사선치료를 처음 선보였던 연세의료원이 국내 방사선치료 도입 100주년에 맞춰 국내 최초로 ‘중입자치료센터’를 개소했다. 세계에서는 16번째 센터다.

 

중입자치료는 X선을 이용하는 기존 방사선치료와 달리 탄소 이온을 활용한 최신 암치료법이다. 입자(탄소원자)를 빛의 70% 속도로 가속한 뒤, 고정·회전형 치료기를 통해 에너지빔을 보내 목표물인 ‘암 세포’만 정확히 제거한다.

 

연세의료원은 최근 그동안 베일에 둘러싸였던 중입자치료센터를 언론에 처음 공개했다. 센터는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내 1만3000여㎡ 부지에 지하 4층·지상 9층 규모로 완공됐다.

 

지하 4층에는 중입자 가속기가, 지하 3~5층에 고정빔·회전형 갠트리 시스템 치료기가 설치됐다. 단일 기관 중 갠트리 시스템 2곳을 갖춘 사례는 세브란스병원이 세계 최초다. 장비 도입에만 1500억 원을 들였고, 센터 건축 비용까지 더하면 3000억 원이 투입됐다.

 

중입자치료센터장은 연세암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이익재 교수가 맡는다. 이 교수는 “면밀한 치료를 위해 의료진을 일본의 여러 중입자치료센터에 파견, 경험과 노하우를 배우도록 했다”고 밝혔다.

박세준 파트장이 가속기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희원 기자

◆발전소야 병원이야… 중입자 가속화하는 ‘가속기실’

 

우선 센터의 중심부인 지하 4층 가속기실을 찾았다. 무거운 원자를 가속화해 에너지를 만들어내려면 거대한 시설이 필수다. 병원 측이 지하 50m 아래까지 치료실을 구축한 이유다. 들어서자마자 직경 20m, 높이 1m 크기에 무게가 220여 톤이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싱크로트론(가속기)이 기다리고 있다. 병원이 아닌 발전소 견학을 온 것 같다.

 

이날 가속기실을 소개한 박세준 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학팀 의학물리파트 파트장은 “싱크로트론은 중입자치료기의 엔진 역할을 담당하는 핵심 기기”라고 설명했다. 

 

가속기실은 3곳 치료실과 연결돼 있다. 각각의 치료기는 암 환자에게 가속실에서 확보한 중입자 빔을 조사, 체내 암세포를 제거하게 된다. 

홍채선 교수가 고정빔 치료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희원 기자

◆고정빔치료실, 이미징 시스템 탑재… ‘빠르고 정확한 치료’

 

지하 3층으로 올라가 내년 가장 먼저 가동될 고정빔치료실을 둘러봤다. 치료실 소개를 맡은 홍채선 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치료 시 환자가 한 자세를 오래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보니, 정확한 스캔과 빠른 에너지 조사가 중요하다”며 “고정빔치료기는 최소 초당 20m, 많게는 100m까지 조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후가 좋은 전립선 환자가 우선 치료 대상이 된다”고 덧붙였다. 

한민철 교수가 갠트리 치료실 뒤편을 소개하고 있다. 정희원 기자

◆“마징가Z 나올 것 같아”… 압도적인 규모의 갠트리 치료실

 

회전형 치료기가 설치된 ‘갠트리 치료실’은 규모 자체가 압도적이었다. 앞쪽은 분명 하얗고, 미래지향적인 이미지가 느껴지는데, 이를 지나 뒤편으로 가보니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일종의 긴 원통처럼 생긴 공간 전체가 갠트리 시스템인 셈이다. 거대 로봇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엄청난 규모다. 2개가 나란히 설치된 갠트리 시스템은 길이 8m, 직경 6m, 무게는 200톤에 이른다. 

 

치료실을 소개한 한민철 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이 기기는 360도 회전하며 중입자를 조사, 어떤 방향에서든 환자의 암세포를 타깃할 수 있다”며 “치료 횟수는 평균 12회로 기존 X-레이, 양성자 치료의 절반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회전형 겐트리는 췌장암과 같은 난치성 암 치료에도 적용할 수 있다. 

윤동섭 연세의료원장

◆난치암 환자 생존률 높이고… 희귀암에도 적용

 

중입자치료는 대부분의 고형암은 물론 산소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100배 이상의 방사선 조사해도 치료가 까다로운 저산소 암세포에도 강력한 효과를 낸다. 다만 혈액암이나 전이암처럼 온몸을 돌아다니는 형태의 암에는 적합하지 않다.

 

의료원 측에 따르면 환자 한 명당 치료 시간은 2분 남짓이지만, 준비 과정까지 포함하면 약 20~25분이 소요된다. 마취조차 하지 않고, 치료 후에 환자가 느끼는 통증은 거의 없어 바로 귀가할 수 있을 정도다.

 

김용배 연세암병원 부원장은 “향후 치료기 3대에서 하루 동안 약 50명, 연간 약 2만명의 암 환자가 치료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병원 측에 따르면 향후 시험가동을 거쳐 고정빔 치료실부터 운영할 예정이다. 내년 9월에는 회전형 치료기 1대를 추가 가동한 뒤, 2024년 3월 1대를 더 가동해 총 3대의 치료기를 순차적으로 활용해나간다. 처음으로 치료받는 환자는 내년 봄인 4월 말~5월 초 사이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윤동섭 연세의료원장은 이날 중입자치료센터 견학 후 이어진 취임 2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중입자 치료는 5년 생존율이 30% 이하여서 3대 난치암으로 꼽히는 췌장암, 폐암, 간암에서 생존율을 2배 이상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골·연부조직 육종 등의 희귀암 치료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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