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교는 성과로 말한다. 외교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국익이라는 실체를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가 벌이고 있는 관세 협상은 그 대표적 시험대다. 하지만 과연 지금 우리가 충분히 싸우고 있는지 궁금하다.
옆 나라 일본은 여러모로 우리나라와 비교된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과 한국은 대미 흑자 규모가 각각 8위와 9위였다. 최근 트럼프가 한국과 일본만 콕 집어 관세 서한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본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당초 25%에서 15%로 최대 10%포인트나 관세 감축을 이끌어냈다. 반도체, 배터리, 철강, 전자부품 등 자국의 미래를 책임질 산업들을 전면에 내세워 미국과 정면 대결을 벌였다. 수치는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세계적인 공급망 불안 속에서 관세 감축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산업 구조는 일본과 유사하다. 심지어 미국 내 투자 규모는 일본을 상회하는 분야도 있다. 지난해에만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 약 10조원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탄핵 정국이란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의 관세 협상은 소극적이고 전략도 없어 보인다. 사실상 기업들만 각개 전투 중이다.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 가운데 자동차, 반도체, 철강, 2차 전지 등이 국가 전략 산업임에도 고관세를 물고 있거나 고관세 부과가 예정돼 있다. 그 피해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물류비, 통관비, 원자재 가격 부담까지 고려하면 이들의 수출 경쟁력은 위험 수준이다.
문제는 관세 협상이 단순한 무역 이슈를 넘어서 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에게는 첫 외교 무대이기 때문에 결과가 중요하다.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트럼프 가랑이라도 기겠다’는 선거용 멘트는 차치하더라도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하물며 미국과 25일 열리기로 했던 2+2 협상 테이블마저 하루 전에 미국의 일방적 취소로 연기됐다. 정부의 언론 브리핑에선 ‘긍정적 분위기’라는 모호한 말만 반복 중이다. 이쯤 되면 정부는 해당 협상을 국가 생존 전략으로 여기고 있는 게 맞는지 궁금하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총력전이다. 대통령이 직접 전면에 나서야 하고 산업통상자원부·외교부·기획재정부가 사활을 걸고 움직여야 한다. 관세는 단순 세율 계산을 떠나 국가 경쟁력 그 자체다. 관세 인하가 가능하다면 국내 기업은 더 수출할 수 있고 더 고용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강 건너 불구경이라면 경쟁국은 앞서 나가고 우리는 뒤처진다.
관세 협상은 국가 단위의 전투다. 준비되지 않은 전투는 필패다. 대통령이 외교전을 선언했으면 그에 걸맞은 전략과 자원,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일본도 했으니 우리도 해줄 거라는 심산으로는 뻔한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지금은 세계 급변의 시대다. 글로벌 산업은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고 미국은 자국 중심의 경제 블록을 구축 중이다. 우리가 첫 번째 관문인 관세 허들을 넘지 못한다면 여러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외교는 숫자 즉, 성과로 말한다. 이제는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