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외국인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겠다며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를 발표했지만 정작 규제 시행 직전 초고가 주택 거래는 막지 못했다.
1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과 등기부에 따르면 지난 4월 23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압구정현대 아파트(전용 198.41㎡, 60평)가 105억 원에 거래됐다. 매수자는 미국 국적의 39세 A씨(한국계 추정)이며 지난 20일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다. 거래 과정에서 농협은행을 채권자로 한 62억7000만원의 근저당이 설정돼 대출을 활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는 지난달 21일 서울 전역과 인천, 경기 일부 지역을 외국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으며, 이달 26일부터는 외국인이 전용 6㎡ 이상의 주택을 사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고 2년간 실거주 의무도 생긴다. 그러나 A씨의 거래는 규제 시행 전에 이뤄져 실거주 의무나 대출 규제 모두 피해갔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례는 정부 규제가 사각지대를 방치한 채 ‘예고 효과’만 준 셈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규제 발표 직후부터 실제 시행까지 두 달이 넘는 시차가 있었던 만큼, 오히려 외국인의 투기성 매수를 부추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국내 실수요자들은 강력한 대출 규제와 실거주 의무에 묶여 있는데, 외국인은 시차를 이용해 초고가 아파트를 자유롭게 매수한 것은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다”며 “부동산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사전 규제 공백을 최소화하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