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광장] ‘말의 해’ 앞두고 불법 도살된 말… ‘황새의 눈물’ 마르기도 전에

제주의 한 승마장에 불법 도살된 말의 사체 부산물이 널려 있다. 마레숲 제공

 

 다가올 2026년은 ‘말의 해’다. 벌써부터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가 찾아온다며 말의 뜨거운 열정과 힘찬 기운을 받자는 덕담이 나오고 있다.

 

 그 한편에서는 사람에 의해 태어난 말들이 그 필요성이 사라지자 죽임을 당하고 있다. 11일 동물권행동 카라와 말보호센터 마레숲에 따르면 지난달 29일에도 제주도 내 유명 관광 A승마장에서 ‘한라마’ 한 마리가 잔인하게 불법 도살됐다. 잘려나간 발굽과 벗겨진 가죽이 방치된 도살 현장 바로 옆에서는 승마 체험 영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한라마는 처음부터 인간의 욕심으로 생겨난 마종이다. 1990년 개장한 제주 경마장의 경주마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정부와 마사회가 토종 제주마와 경주마 더러브렛종을 교배해 인위적으로 생산 육성한 것이 한라마다.

 

 이후 대회 출전 조건을 맞춘다는 이유로 밥을 굶기는 등 동물학대 문제가 지속 대두됐고 결국 2023년 한라마 경주는 전면 중단됐다. 문제는 그 뒤 한라마의 활용법에 대해선 정부와 마사회의 고민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한라마는 애물단지로 전락했고 더 이상 돈벌이가 안 된다는 이유로 도살되는 실정인 것이다.

 

 심지어 이번 사례처럼 도살 비용을 아끼고 말고기의 상품성을 눈속임하기 위해서 허가 받은 정식 도살장이 아닌 사설 승마장에서 불법 도축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자에 따르면 제주에서 말 도축은 주로 12월말부터 2월말까지 이뤄진다. 이번 같은 불법 도축도 은밀하게 행해진다고 한다. 결국 사람들이 말의 해를 운운하며 신년 덕담을 나누는 시기에 정작 말들은 불법으로 목숨을 잃어하는 아이러니가 피처럼 번지리란 얘기다.

 

 불과 2개월 전 벌어진 ‘황새 폐사’ 사건이 오버랩 된다. 지난 10월 15일 경남 김해시 주최로 열린 화포천습지과학관 개관식에서 천연기념물 황새 3마리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방사 퍼포먼스 중 한 마리가 죽어버린 일이다.

 

김해시의 황새 방사 퍼포먼스 중 황새가 바닥에 고꾸라지고 있다. 이 황새는 결국 폐사됐다. 유튜브 경남MBC 뉴스데스크 갈무리

 

 이 황새는 방사에 앞서 가로 30㎝·높이 120㎝ 크기의 좁은 목제 케이지에 갇힌 채로 김해시장, 지역 국회의원의 내빈 연설 등 사전 행사가 이어진 100분가량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퍼포먼스가 시작돼 케이지에서 나온 뒤 하늘로 날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지며 비탈길을 구르면서 떨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폐사했다.

 

 이후 농림축산검역본부가 황새를 부검했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발생하는 ‘비감염성 대사성 근육질환’으로 급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과가 최근 공개됐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는 황새 폐사 사건을 가리켜 “정부, 지자체 등 공공기관에서조차 동물을 ‘연출용 오브제’ 정도로 취급하는 사고방식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결과”라고 비판했다.

 

 앞서 김해시는 2022년에도 충남 예산의 황새공원에서 황새 한 쌍을 데려왔지만 8개월 만에 한 마리가 폐사했고 얼마 뒤 남은 황새도 황새공원으로 돌려보낸 바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재차 황새공원에서 데려온 황새를 데려왔고 그 개체마저 황망한 죽음을 당해야 했다. 황새가 살아가는 친환경 도시라는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타 지역의 황새를 굳이 데려와서 폐사시키는 일을 반복한 셈이다.

 

 최근 두 달 사이 벌어진 한라마와 황새의 죽음은 동물을 생명으로 보지 않고 돈벌이 및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수단’으로 보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현실을 새삼 실감케하는 사건들이었다. 2026년 1월이 밝으면 한동안 신년 기사를 써야할 텐데 ‘말의 해’라는 표현은 차마 쓰지 못할 것 같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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