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정부의 생산적 금융 확대 기조에 맞춰 모험자본 공급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고유의 강점을 살린 특화 영역을 발굴하고, 독자적인 성장 자본 공급을 가속화하며 본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은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딥테크 기업의 스케일업에 집중하고 있다. KB금융이 결성한 ‘KB 딥테크 스케일업 펀드’는 모태펀드 출자금 750억원과 KB국민은행·KB증권·KB손해보험·KB인베스트먼트 등 계열사 출자금 850억원을 합쳐 총 1600억원 규모로 출범했다. 시스템반도체와 바이오·헬스, 로봇, 미래 모빌리티, 우주항공, 양자기술 등 9개 전략 분야 기업에 기업당 100억원 이상을 투자해 기술 상업화와 해외 진출을 지원한다.
신한금융은 창업·벤처기업과 대형 인프라 사업을 두 축으로 투자금융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 창업·벤처펀드 2500억원과 인프라 개발펀드 4500억원 등 총 7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AI와 데이터센터, 첨단 제조, 재생에너지 등 국가 핵심 산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를 포함한 그룹 자체투자 규모는 올해 2조원으로, 국민성장펀드에도 별도로 2조원을 출자한다.
하나금융은 전국 산업단지를 생산적 금융의 거점으로 삼았다. 하나금융은 한국산업단지공단 등과 손잡고 500억원 규모의 ‘산업단지 신성장 펀드’를 조성한다. 산업단지 내 성장 가능성이 높은 입주기업을 발굴해 신사업과 기술개발, 설비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투자하고 금리 우대와 수출·경영 컨설팅도 연계할 예정이다. 제조기업이 밀집한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은행·증권·캐피탈의 금융 지원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우리금융은 비수도권 지역 인프라와 재생에너지에 초점을 맞췄다. 그룹 계열사가 공동 출자한 5000억원 규모의 ‘우리 지역발전 인프라펀드’는 자산의 70% 이상을 지역균형성장 인프라에 투입한다. 해남 태양광과 고창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사업을 비롯해 첨단산업단지와 국가 전략인프라가 주요 투자 대상이다. 부동산 담보 중심의 자금 흐름을 비수도권 실물경제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이다.
NH농협금융은 농업·지역 기반을 살려 농식품과 애그테크에 특화하고 있다. 농협은행은 현재 8개 농식품 펀드, 총 3441억원을 운용 중이며 3년 내 운용 규모를 5000억원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AI 선별기와 도축로봇 등 농축산 현장의 생산성을 높이는 기업에 투자하고 유망기업 발굴부터 판로 개척까지 지원한다. 전국 영업망을 바탕으로 농식품과 지역기업을 발굴하면서 반도체·AI·바이오 등 첨단산업으로도 투자 범위를 넓히고 있다.
5대 금융의 생산적 금융 경쟁은 앞으로 공급 목표액보다 실제 투자 성과에 따라 판가름 날 전망이다. 모험자본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투자기업의 성장을 기업공개와 인수합병 등 비이자이익으로 연결하느냐가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