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낮은 금리와 재정∙무역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엔화 약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공산이 높다는 전문가 진단이 나왔다. 엔화 약세가 한국기업의 수출 경쟁력 등 우리나라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도 견해차가 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4일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와의 인터뷰에서 “미∙일 금리차 확대와 일본의 장기 초저금리∙양적 완화∙재정 확대가 (엔저의) 핵심 원인”이라면서 “미일 당국의 외환시장 공동 개입은 변동성을 완화하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금리∙재정 등 구조가 그대로라면 추세적 엔저를 뒤집기는 어렵다”는 분석을 내놨다.
서 교수는 “엔저가 장기화되고 원화 약세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한국 수출기업은 가격과 마진, 물량에서 동시에 압박받을 수 있다”며 “특히 자동차∙전자∙기계 등 직접 경쟁 업종에서 환헤지∙고부가가치화∙서비스 수출 확대 없이는 구조적 경쟁력 약화가 현실화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엔화 약세 기조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묻는 말에 “자동차나 일반기계 같은 일부 품목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일본 엔화보다는 미국이나 유럽의 무역장벽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과거와 달리 한국이 일본과 직접 경쟁하는 품목이 많이 줄었다는 이유에서다.
양 교수는 “일본은 인공지능(AI)에서 사용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아직 없어 우리나라의 가장 큰 수출 품목에서는 경쟁자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동차나 일반기계 같은 일부 품목을 제외하곤 (엔저로 인한 수출기업 측면) 영향은 크게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에서 부품∙소재∙정밀장비 등을 수입하는 제조업∙중간재 기업은 엔화 표시비용이 낮아져 원가 절감과 투자여력 확대의 수혜를 볼 수 있다. 항공∙여행∙면세∙유통 등 일본향 소비 산업도 방문객 및 지출 증가로 매출 개선이 기대된다고 전문가들을 말한다.
원∙엔 동조화 가능성을 두고선 서 교수는 “원화와 엔화는 낮은 금리∙확장재정∙대미투자∙수출구조 유사성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비슷한 약세 통화’로 인식돼 동조화가 강화된 상태”라며 “이로 인해 엔저가 원화 약세∙변동성 확대를 자극하며, 외환∙금융시장 불안과 수입물가∙실질소득 측면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평가했다.
양 교수는 현재 원화의 가치는 국내 주식시장 변화에 달려 있다고 봤다. 단기적으로는 엔화와의 동조성보다는 증시 변화 및 서학개미의 해외투자 변동,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에 따른 달러 유입에 영향받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최근 엔저로 일본 여행과 엔화 반등을 기대하는 환테크 등의 수요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환테크 현상에 대해선 한목소리로 주의를 당부했다.
서 교수는 “구조적 엔저 요인이 여전히 강해 단기 레버리지 환테크는 손실 위험이 크다”면서 “분산 투자∙장기 시계∙위험 관리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양 교수는 여행 환전 등 때문에 원∙엔 환율이 영향받을 가능성은 낮게 보면서도 “환테크가 거품 논란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한국은행과 정부의 모니터링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노성우 기자 sungco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