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엔저’…韓 경제 영향은] 미·일 개입에 엔저 ‘주춤’…국내 금융시장은 셈법 복잡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뉴시스

엔화 가치가 약 4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가운데, 미국과 일본의 공동 시장 개입으로 엔화가 반등세를 타고 있다. 하지만 엔화 강세 전환을 바라보는 국내 금융시장의 시선에는 경계감이 짙다. 저금리 엔화 자금의 회수를 부추기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자극해 국내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다시 키울 수 있다는 우려 등이 제기되면서다.

 

◆주요국 금리차·재정 적자…40년 만에 최저

 

최근 엔·달러 환율은 164엔대까지 치솟으며 엔화 가치가 1986년 12월 이후 약 4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주요국과의 현격한 금리 격차와 일본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6월 일본은행(BOJ)은 기준금리를 1.00%로 올려 3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미국(연 3.50~3.75%)이나 영국(3.75%) 등 주요국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더욱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50%에 달하는 1340조엔 규모의 정부 부채 탓에 이자 상환 부담이 크다 보니 적극적인 추가 금리 인상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여기에 중동 리스크에 따른 유가 상승이 무역수지를 악화시키는 가운데, 미국의 금리 인하 지연으로 미·일 간 금리 격차가 장기화되는 악순환마저 더해졌다. 결국 구조적 무역적자와 재정 지출 확대, 중앙은행 독립성 논란까지 맞물리며 엔화 약세 압력을 한층 키웠다는 분석이다.

 

◆28년 만의 미·일 공동 개입…엔화 진정세

 

결국 미국 재무부는 엔화 급락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 개입에 나섰다. 미국이 엔화를 사들이며 일본과 공동 대응에 나선 것은 1998년 이후 28년 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엔화가 약세였고 일본은 도움이 필요했다”며 “이는 우정의 신호이자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달러당 164엔에 육박하던 환율은 한때 155.23엔까지 떨어진 뒤 156.92엔 안팎에서 거래되며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엔화 환율이 급변하면서 국내 원화 시장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통상 엔화 급락은 원화에도 큰 부담을 준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원화와 엔화를 아시아 주요 통화로 묶어 거래하는 동조화 경향 탓에, 엔화 약세 시 원화 매도세가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원화와 엔화의 흐름이 다소 엇갈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연 2.75%)과 반도체 수출 호조,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에 따른 달러 유입, 중공업계의 환헤지 수요 등이 원화 가치를 떠받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한때 1600원에 근접했던 원·달러 환율은 상승 폭을 상당 부분 되돌리며 1400원대로 떨어졌다. 

 

원화 강세 기대감이 퍼지며 주요 기업들도 달러 하락에 대비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 호조로 기업들이 쌓아둔 달러 예금의 환전 물량이 늘어날수록 환율은 하락 압력을 받게 된다. 시장에서는 수급 여건 개선에 미·일 통화정책 공조가 더해지면 단기적으로 환율이 추가 하락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엔화 강세 복병…금융시장 변동성 자극 우려

 

그러나 엔화 가치 회복이 역으로 원화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저금리 엔화를 빌려 글로벌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일시에 청산될 가능성이 대표적이다. 엔화 강세 전환으로 자금이 일괄 회수될 경우 자산 시장 전반의 변동성이 급증하게 된다.

 

실제 지난 2024년 7월 31일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0.25%로 기습 인상하자 헤지펀드와 기관들이 대규모 긴급 청산에 나선 바 있다. 당시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자산이 무차별 매도되면서 그해 8월 5일 코스피는 하루 만에 8.77% 폭락해 역대 최대 하락 폭을 기록하는 등 국내 증시가 직격탄을 맞았다.  

 

신윤정 SK증권 연구원은 “엔화 반등 속도가 가팔라질 경우 엔 캐리 거래 청산이 위험 자산 전반의 포지션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며 “원화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주다솔 기자 gives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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