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의 핵심 대미 투자 프로젝트인 미국 전기로 제철소 건설이 첫발을 뗐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미국 생산기지를 통해 자동차 강판뿐만 아니라 휴머노이드 로봇,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우주 항공 등 미국 내 첨단산업 분야에 두루 공급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현대제철은 지난 5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어센션 패리시 도널드슨빌에서 ‘현대제철-포스코 루이지애나 전기로 제철소(HPLS)’ 기공식을 열었다. 이날 기공식에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강경화 주미대사, 랜드리 주지사, 윌리엄 키밋 미 상무부 차관 등 한미 정부 관계자를 비롯해 총 250여명이 참석했다. 현대차그룹에서는 정 회장과 성 김·서강현 사장, 이보룡 현대제철 사장,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 송호성 기아 사장이 참석했다.
현재 공터인 223만평의 부지에는 머잖아 연간 270만t의 열연·냉연·도금 강판을 생산하는 미국 최초의 전기로 기반 자동차 강판 전문 제철소가 들어설 예정이다. 2029년 양산을 목표로 올해 4분기 착공할 계획이다.
HPLS 건립 사업은 현대차그룹이 지난해부터 2028년까지 추진하는 260억 달러(약 35조870억원) 규모 대미 투자 계획의 핵심 프로젝트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5월 미국 프로젝트의 성공적 완수를 위한 전담 조직 ‘북미철강사업부’를 신설한 데 이어 같은 해 6월 제철소 건설 투자를 위한 현대제철 루이지애나 법인을 설립했다. 올해 1월엔 현대차, 기아, 포스코 등 주요 투자사의 지분 출자가 시작돼 마침내 HPLS가 출범했다.
HPLS는 현대차그룹이 주도하고 포스코그룹이 지분 투자를 통해 참여하는 합작 형태로 건설된다. 총투자비는 58억 달러(약 7조8500억원) 규모다. 현대제철이 지분 50%, 현대차와 기아가 각 15%, 포스코가 지분 20%를 투자한다.
현대제철은 HPLS가 글로벌 시장 진출을 뒷받침하는 전략적 거점이자 탄소저감 생산체제 전환을 실현할 전진기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HPLS를 가동해 미국의 철강제품 관세로 인한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저탄소 철강제품을 기반으로 북미 시장 접근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HPLS 건설은 현대차그룹의 북미 자동차 시장 현지화 전략의 핵심이기도 하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 조지아 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자동차 강판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향후 미국 내 다른 완성차 업체까지 판로를 넓힌다는 구상이다. 호세 무뇨스 사장은 이날 기공식에서 취재진과 만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우리 차에 HPLS 철강을 사용하고 싶다”며 “모든 차종에, 가능한 한 많은 차종에 적용할 계획이다. 앨라배마와 조지아에 있는 미국 공장에서 사용하는 철강을 최대한 현지화하고 싶다”고 밝혔다.
나아가 현대차그룹은 향후 전기로 제철소에서 생산하는 철강재를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아틀라스에 적용하고 향후 우주항공 분야에까지 활용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정 회장은 이날 기공식 환영사에서 HPLS의 역할을 자동차산업에 국한하지 않았다. 그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철강은 현대차그룹은 물론 다른 완성차 업체들이 차세대 모빌리티를 생산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AI 데이터센터에서 발전 분야에 이르기까지 핵심 산업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 회장은 이날 기공식 행사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이곳에서 생산되는 철강이 아틀라스에 적용될 수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당연히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저희가 더 열심히 해서 스페이스X 등 로켓에도 철강을 공급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자동차 강판과 일반강판을 주력으로 생산할 HPLS의 철강재를 향후 로봇과 우주항공 등 미래 산업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기대를 나타낸 것이다. 정 회장의 구상이 현실화하면 HPLS는 한국과 미국의 모빌리티 산업, AI 데이터센터 등 첨단미래 산업 발전을 위한 핵심 거점이 될 전망이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