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를 차주 ‘개인’ 단위가 아닌 ‘가구’ 단위로 확장해 분석한 결과, 취약계층의 실질적인 상환 부담과 고차입 ‘영끌 가구’의 가족 간 연쇄 부실 위험이 여실히 드러났다. 겉보기에는 전반적인 건전성 지표가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이면에서는 가구원 간 부채 분산과 동반 부실 위험이 심화하고 있으며,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빚 갚는 데 쓰느라 지갑을 닫은 가구도 열 집 중 한 집을 웃돌았다.
한국은행이 7일 발표한 ‘BOK 이슈노트 : 가구DB를 이용한 가계부채 리스크 평가’에 따르면, 한은은 KCB 신용정보 자료를 바탕으로 전국 206만 가구(모집단의 9.2%)의 부채·자산·소득·지출을 월별로 추적할 수 있는 대규모 패널 데이터(가구DB)를 새로 구축해 이같이 분석했다.
◆가구 단위 합산하자 반전… 저소득층 부채 부담 더 크고 연체율 급등
그동안 가계부채 평가는 주로 개인 차주 단위로 이루어져 가구 전체의 실질적 상환 능력을 포착하는 데 제약이 있었다. 실제로 2인 가구의 49.8%, 3인 가구의 66.2%는 2명 이상의 가구원이 대출을 동시에 나누어 보유하고 있었으며, 2인 가구의 경우 최초 대출 발생 후 1개월 이내에 다른 가구원의 추가 대출이 일어난 비중이 46.5%에 달해 부채가 가구 내에서 광범위하게 공유되는 모습이 확인됐다.
특히 분석 단위를 개인에서 가구로 전환하자 재무건전성 지표(LTI·LTV)는 상반된 양상을 나타냈다. 부채를 보유한 개인 기준으로는 소득이 높을수록 부채 비율이 상승했으나, 가구원 전체를 반영한 가구 기준에서는 소득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부채 부담이 완화됐다. 반대로 소득 1·2분위 저소득층은 가구 단위로 볼 때 LTI와 LTV가 개인 단위보다 훨씬 높게 산출됐다. 개인 명의로 쪼개진 대출 탓에 저소득층의 실질적인 부채 리스크가 기존 통계 체계에서 과소평가되어 왔음이 실증된 셈이다.
가족 간 신용위험의 공유 실태도 뚜렷했다. 가구주가 연체 중인 가구에서 다른 가구원이 함께 연체하는 ‘조건부 연체율’은 2025년 12월 기준 11.1%에 달해 전체 가계 연체율(1.1%)을 10배 이상 웃돌았다. 가구주가 연체하기 6개월 전부터 가구원의 신용점수가 동반 급락하는 양상도 확인됐다.
◆DSR 46% 넘으면 지갑 닫는다… 저소득층 중심으로 ‘소비 절벽’
과도한 빚은 실물경제의 핵심 축인 내수 소비도 직접적으로 옥죄고 있다. 소비함수 추정 결과, 가구의 실제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DSR)이 46%를 넘어서면 차입에 따른 유동성 효과가 사라지고 카드사용액 등 소비 지출이 순감소로 전환되는 임계점에 도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 기준 부채를 보유한 가구 중 이 임계치(46%)를 초과해 채무부담으로 소비에 제약을 받는 가구는 11.1%로 추정됐다. 특히 전체 가구의 초과 비중은 완만하게 둔화하는 흐름을 보인 반면, 소득 1분위 저소득층에서는 이 비중이 2021년 11.4%에서 2025년 14.5%로 가파르게 치솟아 취약계층의 소비 여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음을 드러냈다.
◆ ‘고차입 주택취득가구’ 금리 충격에 극도로 취약… 가족 간 ‘도미노 연체’ 1.9배
금리 상승 충격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는 고위험군에 위험이 집중되고 있음을 경고한다. 주택 매수 과정에서 과도하게 빚을 내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부담 증가폭이 상위 10%에 달했던 ‘고차입 주택취득가구’는 구성원의 약 71%가 중·고소득층(3~5분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금리가 100bp(1%포인트) 오를 경우 12개월 후 연체비율이 0.81%포인트 급등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기존 주택보유가구의 연체비율 증가폭(0.52%포인트)을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저소득층인 2분위(0.83%포인트)와 맞먹는 취약성이다.
더불어 고차입 가구 내에서 가구원 1명이 연체할 경우 12개월 내 다른 가구원이 추가로 연체할 확률은 8.8%로 집계돼, 기존 주택보유가구(4.6%)의 1.9배에 달했다. 과도한 차입이 한 개인의 부실에 머물지 않고 가족 전체의 동반 부실로 확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미다.
한은은 “가계부채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개인 중심의 분석 한계를 넘어 가구 단위 정보를 정책에 보완·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기대심리를 통제하기 위한 일관된 통화·거시건전성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금리 충격에 취약한 고차입 주택취득가구의 부실 전이와 저소득층의 소비 제약 심화에 선별적이고 정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