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 중반까지 내려앉은 가운데, 이번 하락세는 ‘미국 금리 상승이 달러 강세와 원화 약세로 이어진다’는 전통적인 공식이 깨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와 함께 미 국채시장 불안이 향후 국내 증시 충격과 취약차주의 이자 부담 가중이라는 복합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됐다.
9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8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5.1원 오른 달러당 1345.6원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 5거래일 만에 상승 전환했지만, 장중에는 전날에 이어 1330원대를 기록하며 안정세를 이어갔다. 한때 1550원선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이 최근 1340원대 안팎으로 하락한 배경에는 미 국채 금리 급등세 속에서도 달러화가 동반 강세를 보이지 못하는 이례적 흐름이 자리 잡고 있다.
이날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미 국채 장기금리 상승의 구조적 배경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4.7% 안팎, 30년물 금리가 5.3%를 웃도는 등 장기금리가 급등한 것은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기대보다는 실질금리와 기간프리미엄 상승이 주도하고 있다. 연준의 양적긴축과 글로벌 공적 수요 축소로 가격에 민감한 민간 부문이 듀레이션 위험을 더 많이 떠안게 되면서 수급 충격에 대한 민감도가 구조적으로 확대된 데다, 미 재정 불안 요인이 겹친 탓이다.
강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의 만성적 재정 불안이 달러 약세를 유발하며 일차적으로 원·달러 환율을 1340원대까지 끌어내렸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라고 짚었다. 미 재정 및 채권시장 불안은 달러 약세를 통한 ‘원화 절상’ 경로뿐만 아니라, 미 금리 급등이 국제금융시장의 위험회피를 자극해 신흥국 통화인 원화를 급격히 절하시키는 상반된 경로를 함께 지니기 때문이다. 레버리지에 의존하는 헤지펀드의 차익거래 포지션 청산 등 미 국채시장의 조정이 급격한 시장 불안으로 번질 경우, 위험회피 경로가 전면에 등장하며 환율 흐름이 급반등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미 국채발 충격이 국내 주식시장과 취약차주로 전이될 위험성에 대해 강한 경계감을 나타냈다. 기간프리미엄과 실질금리가 주도하는 금리 상승 국면에서는 미래 현금흐름에 의존하는 성장주일수록 할인율 상승의 직격탄을 맞는다.
실제로 지난달 19일 미 장기 국채금리 급등 충격에 코스피가 하루 만에 5.8% 폭락하며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바 있다. 강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5년간 미 국채금리와 주가의 상관관계가 크게 낮아져 채권의 완충 기능이 약해진 만큼, 미 장기금리의 추가 상승이 글로벌 위험선호 위축과 외국인 자본 유출로 이어져 국내 증시를 재차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 큰 문제는 국내 대출시장과 취약차주로 이어지는 연쇄 타격이다. 최근 국내 국고채 장기금리는 초장기물 공급 확대 등 자체 수급 부담을 안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미 국채 기간프리미엄에 민감하게 동조해 온 만큼 대외 충격이 가세해 국고채 금리를 추가로 밀어 올릴 수 있다. 국고채 금리 상승은 은행채와 회사채 등 민간 조달비용의 전방위적 상승으로 직결된다.
여기에 7월 이후 기준금리 인상이 재개되면서 단기금리에는 통화긴축이, 장기금리에는 기간프리미엄 상승이 작용해 수익률곡선 전반에 걸쳐 강력한 금리 상승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강 선임연구위원은 “변동금리 비중이 높은 가계대출의 경우 이러한 금리 상승이 이자 부담으로 빠르게 전가된다”며 “한계기업과 자영업자 등 취약차주의 상환능력 저하와 연체율 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철저히 유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