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세계 최대 규모의 방위산업 시장인 미국에 22억달러(약 3조원)를 투자해 대규모 첨단 탄약 제조시설을 구축한다. K9 자주포의 미국 시장 진출을 추진하는 데 이어 155㎜ 포탄과 추진장약까지 현지 생산 체계를 갖춰 미국 지상무기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국내 방산기업이 미국 군수 생산 기반에 직접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사례로는 최대 수준이다. 한화는 무기체계뿐 아니라 지속적인 수요가 발생하는 탄약까지 미국 현지에서 생산해 공급망을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7년간 22억 달러 투자…미 육군 기지에 첨단 제조 캠퍼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국 법인 한화디펜스USA는 22일 미국 아칸소주 파인블러프의 미 육군 기지 '파인 블러프 아스널(PBA)'에서 현지 사무소 개소식을 열고 생산기지 조성에 본격 착수했다고 밝혔다.
한화는 지난 1월 미 육군과 장기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PBA 부지를 활용하는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후 약 8개월간 부지 실사와 사업 구체화 작업을 진행해왔다. 앞으로 7년간 22억 달러를 단계적으로 투자해 이곳에 한화 첨단 제조 캠퍼스를 조성할 계획이다.
시설이 본격 가동되면 현지에서 400개 이상의 제조·엔지니어링 일자리가 만들어질 전망이다. 핵심 생산 품목은 현대 포병 전력의 표준 구경으로 사용되는 155㎜ 포탄 부품과 포탄 발사에 필요한 모듈화 추진장약(MCS)이다.
특히 원자재와 기초 화약 조달부터 정밀 가공, 조립, 완성품 검사까지 탄약 생산 전 과정을 한곳에서 수행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 생산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자동화와 지능형 제조 기술도 적극 적용한다.
◆탄약 부족 겪는 美…노후 군수 생산시설 현대화 수요
이번 투자는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탄약 생산능력 확대와 군수 공급망 강화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중동지역 분쟁 등으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의 탄약 수요가 크게 늘어난 반면 미국 내 일부 탄약 생산시설은 노후화돼 단기간에 생산량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미 국방부는 이에 따라 155㎜ 포탄을 비롯한 주요 탄약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기존 군수 생산시설을 현대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민간 방산기업과 동맹국 업체의 미국 내 생산기반 구축도 확대하는 추세다.
한화는 최신 자동화 생산설비와 정밀 제조기술을 적용해 생산성과 품질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미국으로서도 자국 영토 내에 추가 탄약 생산거점을 확보해 공급망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앨라배마 자주포·아칸소 탄약…미국 지상무기 시장 공략
이번 투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추진하는 미국 지상무기 시장 현지화 전략과도 맞물린다.
한화는 지난달 미 육군의 기동전술화포(MTC) 현대화 사업에 참여해 K9MH 시제품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위해 미국 앨라배마주 오펠리카에 시제품 조립과 통합, 시험을 담당할 시설도 구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화는 앨라배마의 자주포 체계 거점과 아칸소의 탄약·추진장약 생산거점을 미국 남부지역에 동시에 확보하게 된다.
자주포 등 무기체계 플랫폼과 이를 운용하는 데 필요한 탄약을 함께 공급할 수 있는 사업구조를 갖추는 셈이다. 무기체계 판매 이후에도 수십 년간 발생하는 유지·보수와 탄약 수요를 연계할 수 있어 장기적인 미국 사업 기반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자주포 조립·시험시설과 탄약 생산시설이 모두 가동되면 한화가 단순한 무기 수출업체를 넘어 미국 현지 생산업체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클 쿨터 한화디펜스USA 대표는 “한화가 보유한 정밀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확대해 미국 국방 산업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약속을 실천하고 있다”며 “미국의 탄약 생산 역량을 높이는 동시에 한미 양국의 방위산업 협력을 강화하는 데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