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년 만에 도입한 ‘석유 최고가격제’가 어느덧 시행 두 달째를 맞이하는 가운데 중동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정부의 재정 부담이 늘어나는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0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3월13일부터 2주 단위로 정유사의 주유소 공급가격에 상한을 정하는 최고가격제를 시행 중이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제23조를 근거로 석유 가격이 현저히 등락해 국민 경제의 안정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 산업통상부 장관이 판매 가격의 최고액을 직접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2월 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발발하고 그 영향이 중동 전체로 번지며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국내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최고가격제 카드를 꺼냈다. 1997년 유가 자유화 조치 이후 처음으로 정부가 시장 가격에 직접 개입한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최고가격제는 3월말 2차 발표 때 유종별 리터당 210원을 인상한 이후 가격이 유지되고 있다. 지난 8일 0시부터 적용 중인 휘발유 가격은 2∼4차와 동일한 리터(ℓ)당 1934원,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8일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한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당 2011.71원, 경유는 2006.24원으로 전날과 비슷한 수준(휘발유 2011.70원·경유 2006.12원)이었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대에서 등락을 반복하는 점과 물가 상승으로 인한 국민 부담 등을 고려해 최고가격을 유지했다는 입장이다.
최근 국가데이터처의 발표를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2.6% 올라 1년 9개월 만에 최대 폭 상승을 기록했는데,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가 그나마 물가 상승률을 1.2%포인트 낮춘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최고가격제를 실시하지 않았다면 물가가 그만큼 더 올랐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만큼 최고가격제의 효과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자료가 된다.
다만 가격이 억제되면서 발생한 ‘인상 억제분’은 숙제로 남아 있다. 앞서 국제유가가 급등했을 때 정부는 민생 안정을 이유로 최고가격에 인상분을 일부만 반영해왔다. 그러면서 누적된 인상 억제분은 휘발유 약 200원, 경유 약 400원, 등유 약 600원으로 파악된다.
앞서 정부는 최고가격제를 실시하면서 국제유가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해 발생하는 정유사의 손실을 사후에 보전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석유사업법 제23조에는 가격을 통제받은 사업자의 손실을 국가가 보전해 줄 수 있다는 규정이 포함돼 있다.
결국 최고가격제 시행 기간이 길어지면 재정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최고가격제가 6개월간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목적 예비비 4조2000억원을 편성했다고 밝혔으나, 업계에서는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누적 손실액이 이미 3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앞서 한국석유유통협회는 지난달 초 “최고가격제 도입 이후 정유사의 석유대리점 공급가와 주유소 직공급가가 동일해지면서 저장·운송·인건비 등 기본 유통 비용조차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유통 체계가 무너지면 주유소 공급 차질과 소비자 불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호소했다.
최고가격제 해제 시점과 방법을 놓고도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다. 가격 상한이 사라지면 억제됐던 국내유가가 급등할 수 있다는 걱정이 제기되면서 연착륙할 수 있는 ‘출구 전략’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
전문가들은 중동전쟁이 더 오래 지속될 경우 최고가격제를 고수하기보다 가격 상승 요인을 완화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유류세 인하를 통한 가격 조정, 대체 수입선을 발굴을 통한 공급 확대 등이 대안으로 꼽히는 상황이다.
한편 이날 SK에너지는 자사 주유소에 매월 최대 200억원 규모의 ‘고유가 및 위기극복 지원금’을 이르면 이달 중으로 지급한다고 밝혔다. 직영을 제외한 국내 2500여개 SK주유소 전체가 대상이며, 지원금은 판매량 연동 지원금 및 정액 지원 방식으로 지급된다. 지원 기간은 1차 최고가격제 시행 시점인 지난 3월13일 0시 이후 발생 분부터 향후 최고가격제 종료일까지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