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된 집 주인과 세입자의 ‘머리 싸움’

세입자, “계약서 다시 쓰자”…7월 이후 계약은 5%만 인상 요구
집 주인, 실거주 내세우며 갱신 거부…전세대출 질권 설정 막기도

사진=연합뉴스

[세계비즈=안재성 기자]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속전속결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고 즉시 시행한 데다 기존 계약에까지 소급 적용하면서 집 주인과 세입자의 ‘머리 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계약 갱신을 앞둔 전세 등 세입자들은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미 체결한 계약까지 뒤엎기를 요구하는 등 새로 개정된 법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이에 맞서 집 주인도 “실거주하겠다”며 계약 갱신을 거부하거나 전세대출의 질권 설정을 막는 등 법의 허점 찾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31일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를 골자로 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공포안을 심의·의결했다. 앞서 국회는 전날 열린 본회의에서 해당 개정안을 의결했었다.

 

지난 27일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불과 나흘만에 국회를 통과해 시행까지 이뤄진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평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우선 세입자가 기존 2년 계약이 끝나면 추가로 갱신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해 ‘2+2년’을 보장한 것이다. 또 계약 갱신 시의 임대료 상승폭은 직전 계약 임대료의 5% 내로 제한했다.

 

그러나 시장에 가장 큰 파도를 불러온 것은 정부와 여당이 해당 개정안을 시행 후에 신규로 체결된 임대차 계약뿐만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계약에까지 소급 적용해버린 것이다. 때문에 과거 체결한 임대차 계약이 올해 7월 이후에 종료되는 세입자들은 모두 계약 갱신 및 임대료 상한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반면 8월 이전에 계약 기간이 종료되는 세입자들은 개정안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또 월세뿐만 아니라 전세 보증금까지도 인상폭 상한을 5%로 못박아 버렸다. 전세의 월세 전환조차 세입자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도록 제한했다. 이는 최근의 전셋값 폭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기에 집 주인과 세입자의 셈법이 매우 복잡해졌다.

 

먼저 세입자들이 행동에 나섰다. 올해 8~9월경 계약이 만료돼 이미 집 주인과 새로운 계약에 대해 합의해둔 세입자들은 기존 합의를 뒤집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구두 계약은 물론 이미 계약서를 쓴 세입자들까지 계약서를 새로 쓸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들은 전세금을 5% 넘게 올리는 걸 거절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분노하는 집 주인과의 사이에서 조율하느라 몹시 힘들다”고 한숨을 쉬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월세라면 몰라도 전세금 인상폭을 겨우 5%로 제한한 것은 너무 현실에 맞지 않다”며 “집 주인들의 손해가 너무 극심하기에 이를 그대로 수용하는 자는 극소수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집 주인들은 이미 법안의 허점을 발견, 반격에 나섰다. 우선 실거주를 내세워 계약 갱신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한 다주택자는 “법안에 따르면, 본인이나 직계 존·비속이 실거주할 경우 계약 갱신 거부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다주택자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이미 써놓은 계약서까지 새로 쓸 것을 요구하는 세입자가 너무 괘씸하다”며 “차라리 집을 공실로 비워놓을지언정 일단 실거주를 내세워 현 세입자부터 쫓아낼 것”이라고 분노를 토했다.

 

전세대출의 질권 설정을 막겠다는 집 주인들도 속출 중이다. 세입자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서울보증보험(SGI)의 보증을 받아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전세대출을 받을 경우 집 주인이 전세 보증금에 대한 질권 설정에 동의해야 한다. 이 동의를 거절하면, 세입자는 전세대출이 막혀 곤란해질 수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전세의 월세 전환까지 틀어막은 것은 집 주인들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한 것”이라며 “집 주인들 입장에서도 가능한 편법을 모두 동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장기적으로는 전세 제도의 소멸을 예측하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세 제도는 세입자가 낸 보증금을 후일 전액 돌려받는 데다 월세 등 추가 지출이 없어 세입자에게 매우 유리한 제도”라면서 “그런 상황에서 집 주인들의 재산권 행사를 이토록 심하게 제한하면 집 주인들이 전세를 유지할 이유가 사라진다”고 분석했다.

 

그는 “기존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게 될 때부터 다주택자들이 최대한 월세로 전환할 것”이라며 “결국 세입자들이 행복해 하는 기간도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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