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회의 땅’ 중동을 향한 우리 기업들의 관심이 뜨겁다. 특히 지난해 11월 ‘미스터 에브리띵(Mr.Everything)’으로 불리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방한이 큰 계기가 됐다.
빈 살만 왕세자는 석유 시대 종말에 대비해 사우디아라비아에 네옴시티 등 대규모 친환경·첨단 도시를 만드는 구상인 ‘비전 2030’ 실현을 위해 한국뿐 아니라 중국, 유럽 등 세계 각국과 활발히 접촉하며 거대한 비즈니스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7일 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동 땅에서 새로운 기획를 모색 중인 대표적인 산업군은 건설과 물류업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이미 지난 1970년대와 1980년대 거세게 일었던 첫 번째 중동 붐에 올라타며 몸집을 키워왔으며, 현재까지도 ‘친(親)중동’ 행보를 이어 오고 있는 대표적인 업계다.
전문가들은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서 최근 인프라 확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데다가 낮은 세율 등 좋은 기업 환경 요건도 갖추고 있어 중동 지역 특유의 문화를 이해하고 이들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노력이 수반되면 ‘중동 수혜’를 보는 우리 기업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건설업계, 네옴시티 필두로 수주전 활발 예상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지역은 우리 건설업계에는 전통적인 기회의 땅이었다. 우리 건설업계는 지난 1970년대 ‘오일머니’를 잡기 위해 중동 건설 시장에 뛰어들며 중동 신화를 쓴 이후, 2000년대 고유가로 인해 중동 산유국들의 재정여력이 좋아지며 일어난 또 다른 중동 붐에 합세하는 등 지속적인 ‘친중동‘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사우디 등 중동 시장은 현재도 세계 최고 수준의 플랜트 건설 회사들이 차별화된 기술력을 앞세워 가장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건설 기업들은 이러한 중동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중동 시장은 코로나 19 장기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건설 원자재값 폭등, 국내 경기침체와 고금리로 인한 주택시장 부진의 중요한 탈출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삼성물산 건설부문(삼성물산)은 중동 지역에서 태양광, 그린수소·암모니아, 모듈러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 나서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8월, 카타르에너지가 발주한 총 발전용량 875㎽ 규모의 태양광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카타르 메사이드(Mesaieed)와 라스라판(Ras Laffan) 지역 2곳에 각 417㎽ 급과 458㎽ 급의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삼성물산이 단독으로 EPC를 수행한다. 공사금액은 약 8000억원으로 사업부지에 설치되는 태양광 패널만 160만개에 달한다.
지난 2021년 10월 삼성물산은 사우디아라비아 투자부(MISA)와 포괄적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현지 그린수소, 모듈러, 인프라 사업 등에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후 2022년 1월에는 삼성물산-포스코-사우디국부펀드(PIF) 3자간 양해각서(MoU), 11월에는 한국전력-석유공사-남부발전까지 포함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그린수소·암모니아 생산 및 활용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2022년 11월에는 사우디 PIF와 모듈러 공법을 활용한 현지 대규모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올해 1월 협력사항을 구체화한 후속 협약을 맺으며 중동 모듈러 시장에서도 사업 기회를 엿보고 있다.
현대건설은 사우디 사토프 석유화학 단지의 핵심인 ‘아미랄 프로젝트’ 수주를 기대하고 있다. 총 50억8000만달러(6조6500억여원) 규모의 아미랄 프로젝트의 4개 패키지 중 현대건설은 패키지 1(스팀크래킹 시설 설치공사, 14억7000만달러)과 패키지4(패키지1~3 연결공사, 10억7000만달러)를 담당한다. 발주처는 사우디의 국영 석유화학·정유사인 아람코다.
또 현대건설은 현재 사우디 네옴 프로젝트의 핵심인 친환경 신도시 '더라인'의 터널공사의 시공을 진행 중이다. 또 현대차그룹과 함께 네옴시티의 스마트시티 및 신개념 이동수단(UAM, 자율주행, 하이퍼루프 등) 분야에서 수주 시너지 효과도 기대되고 있다.
DL이앤씨도 사우디아라비아와 인연이 깊다. DL이앤씨는 1973년 11월 사우디아라비아에 지점을 설치하고 아람코사가 발주한 정유공장 보일러 설치공사를 도급금액 16만불에 수주하면서 ‘해외 플랜트 수출 1호’를 달성한 바 있다. DL이앤씨는 오랜 기간 사우디와 인연을 맺으며 사우디인들로부터 근면함을 인정받은 국내 건설 기업이기도 하다.
DL이앤씨 관계자는 “사우디는 중동 최대의 발주시장인 만큼 가장 엄격하고 까다로운 공정관리 및 공사 자격요건을 요구한다”며 “때문에 사우디 시장에서 많은 실적을 보유한 플랜트 건설회사는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인정받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DL이앤씨는 최근 사우디 국영광물회사 마덴이 발주한 총사업비 1조1000억원 규모의 마덴 암모니아 플랜트 건설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다. 사우디 라스 알 카이르 (Ras Al-Khair) 지역에 위치한 해당 현장에서는 하루 3300톤의 암모니아가 생산되고 있다.
또 다른 해외건설업계의 강자들인 GS건설은 최근 수처리 사업에서, 대우건설은 이라크 인프라사업에서 강점을 드러내고 있다.
GS건설은 자회사이자 세계적 수처리 업체인 GS이니마가 예상 매출 약 2조4000억원 규모의 오만(Oman) 해수담수화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동 지역은 세계 최대 해수담수화시장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GS건설은 오만 수전력조달청(OPWP)에서 발주한 바르카 5단계 민자 해수담수화프로젝트(IWP)의 사업비 조달을 위한 금융 약정을 지난 2022년 6월 완료한 바 있다.
바르카 5단계 민자 담수발전사업(IWP) 프로젝트는 오만의 수도인 무스카트 서쪽으로 약 60km 떨어진 곳에 10만㎥ 규모의 해수담수화 시설이 들어서는 것으로, GS이니마가 단독으로 EPC 및 운영권 100%을 갖는다. 총 투자비는 약 1억3000만달러(1700억여원), 예상 매출은 약 7000억원에 이르며, 상업 운영은 2024년 2분기에 시작된다.
허윤홍 GS건설 신사업 부문 대표는 이와 관련 “오만 바르카 프로젝트를 본격화하며 중동 지역 등으로 기술력을 확대할 계기가 될 것”이라며 “수처리사업은 GS건설의 미래 성장 동력이자 ESG시대 대표적인 친환경 사업으로 이 분야의 글로벌 리더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우건설은 이라크를 중동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있다. 대우건설은 지난 3월 백정완 대우건설 사장이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과 함께 이라크 알포(Al Faw) 항만 건설현장을 방문했다며, 당시 우리 기업기업의 알포 항만 사업 진출 확대 방안과 K-컨소시엄(대우건설‧부산항만공사‧SM상선경인터미널)의 항만 운영사업 추진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대우건설은 이라크에서만 2013년 8월 아카스(AKKAS) CPF(Central Process Facility) 건설공사를 필두로 알포 항만 방파제, 컨테이너 터미널 호안 공사 등 총 12개 프로젝트(약 6조5500억원)를 수행한 바 있다.
◆CJ대한통운 등 물류업계…중동 등 초국경 물류 시장 공략 박차
이미 국내 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든 물류업계도 중동 시장을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건설업계 못지 않게 물류업계도 과거부터 지금까지 중동시장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며 “역사적으로 중동은 동서무역의 전략적 중심지였기에 수송과 물류 산업의 세계적 중심지 역할을 해온 곳이다.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물류업계 중 중동 시장 진출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은 CJ대한통운이다. CJ대한통운은 지난달 10일 사우디에서 ‘글로벌권역물류센터(GDC)’를 구축하고 중동 해외직구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이어 다음날인 11일 강신호 대표가 두바이에 위치한 현지법인 CJ ICM을 방문해 경영현안을 점검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현재 사우디를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동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성 때문”이라며 “외상거래를 금지하는 이슬람 율법 때문에 중동은 신용카드 사용률이 낮고 전자상거래 시장도 성장이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최근 사우디와 UAE를 중심으로 신용카드가 보편화되고 인터넷·모바일 이용률이 높아지면서 전자상거래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마켓(Research and Market)’ 조사결과에 따르면 중동의 이커머스 시장은 2022년부터 2027년까지 매년 약 11.5% 이상 성장하고, 사우디가 이 중 상당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CJ대한통운은 내년 하반기 본격 가동 예정인 사우디 GDC가 중동시장 공략의 첨병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최근 사우디가 석유 중심 산업구조 탈피를 위해 추진 중인 경제개혁정책도 CJ대한통운 등의 기업들에게 기회가 될 전망이다.
사우디 정부는 ‘비전 2030’의 7대 사업 중 하나로 ‘국제무역과 교통 허브 국가를 건설하고, 물류성과지수를 세계 25위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리야드 공항 일대에 300만㎡ 규모로 통합물류특구(SILZ)를 조성했다.
아와드 알 술라미 사우디 민간항공청 부사장은 협약식에서 “CJ대한통운과 함께 일하며 경험한 결과 오늘의 이 협약이 사우디의 이커머스와 물류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CJ대한통운의 사우디 진출을 두팔 벌려 환영하며, 더 많은 투자와 사업 확대를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실화된 중동 특수…문화적 이해·긍정적 관계 설정 중요
산업계 전문가들도 오일머니를 앞세운 중동 시장이 다시 한 번 우리 기업에게 기회의 땅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손태흥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우디 중심의 중동 건설시장은 지난 2021년부터 2026년까지 연평균 4.4%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두 연평균 5.2%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되는 인프라 부문이 이를 견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우리와 정치·문화적으로 많은 부분이 다른 만큼 성공적인 투자를 위해서 이에 대한 면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종천 한·사우디 친선협회 회장은 지난 4월에 열린 한 글로벌 투자 컨퍼런스에서 “중동 비즈니스를 위해선 문화와 역사를 알아야 한다”며 “특히 사전 정보 없이 진출하면 손해를 본다는 유목민 정신은 현대의 중동 비즈니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관계를 중시하는 이슬람 사회의 정서도 고려해야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송정은 기자 johnny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