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초 입주를 시작한 대구의 한 아파트 단지는 입주 후에도 미분양 물량이 남아 눈물의 할인분양을 진행했다. 분양가의 85%를 5년 뒤에 납부하는 잔금유예 5년 또는 선납 할인 7000만~9300만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미분양 털어내기에 안간힘을 썼다. 이 아파트 단지는 부동산 호황기이던 2021년 분양했다.
#지난달 28일 지난해 국토교통부 시공능력 평가에서 111위를 차지한 광주지역 건설업체 영무토건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로써 올해 들어 법정관리를 신청한 중견 건설사는 11곳으로 늘었다. 건설업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올해 건설업계에선 경영난에 따른 법정관리 신청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업계에선 ‘7월 위기설’이 감돈다.
건설경기가 끝 모를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급기야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나쁠 거라는 한국은행 전망까지 나왔다. 고금리, 자재·인건비 등 공사원가 상승, 지방 부동산 경기 위축 등 겹악재에 최근 수년 동안 주택 부문에서 과잉 투자가 이뤄져 깊은 침체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건설업계의 유례없는 장기 불황이 우리나라 경제를 옥죄는 대형 악재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1일 한국은행의 수정 경제 전망에 따르면 올해 건설투자 성장률은 -6.1%로 예상된다. 이는 한은의 경제통계시스템(ECOS) 시계열상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13.2%) 이후 최저 수준이고, 1956년(-6.7%)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낮다.
건설투자 분기 성장률(직전분기 대비) 역시 지난해 2분기(-1.7%)부터 3분기(-3.6%)와 4분기(-4.5%)를 거쳐 올해 1분기(-3.2%)까지 네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2017년 4분기(-2.8%)부터 2019년 1분기(-0.9%)까지 여섯 분기 뒷걸음친 이래 최장 역성장 기록이다. 그러나 마이너스 폭을 비교하면 최근 네 분기(1.7∼4.5%)가 2017∼2019년 당시(0.1∼2.8%)보다 월등히 크다. 그만큼 건설경기 침체의 골이 역대급으로 깊다는 뜻이다.
또 통계청의 1분기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공사 실적을 보여주는 건설기성(불변)은 27조120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20.7% 감소했다. IMF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3분기(24.2%)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경기 부진 속에 주택을 다 지어놓고도 팔지 못한 악성 미분양도 계속 불어나며 지난 4월에는 2만6422가구에 달했다. 이는 2013년 8월 이후 11년8개월만에 최대치다. 악성 미분양 증가는 건설사의 재무 부담과 직결돼 있어 업계의 우려가 크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미분양 주택 대부분이 지방에 있다. 지방 부동산시장 침체로 인한 미분양 적체가 지방 건설업체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처럼 부진한 건설경기는 전체 한국 경제에도 큰 부담을 주고 있다. 건설업은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국가 경제의 근간이다. 한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월 1.5%에서 0.8%로 불과 석 달 새 0.7%포인트(p)나 낮아졌는데, 하락 폭(0.7%p) 가운데 절반이 넘는 0.4%p가 건설투자 침체 때문이라는 게 한은 측 설명이다.
고금리와 건설비용 상승 등 단기 경기 요소들과 인구 감소에 따른 주택수요 부족, 2017∼2022년 과잉투자, 해소되지 않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 등 중장기 구조적 문제가 모두 건설경기 악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지호 한은 조사국장은 지난달 29일 수정 경제 전망 브리핑에서 “건설업의 부진엔 경기적 요인도 있는데, 원자재 가격·인건비가 오르면서 건설비 상승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높다”며 “그동안 금리가 오른 영향도 있고, 계엄 등 정치적 불확실성에 건설사가 분양과 건설투자 등을 미룬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정치적 불확실성 등이 해소되는 하반기부터 건설투자가 조금씩 살아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건설 투자 부진의 구조적 문제에는 사실상 뾰족한 해답이 없는 상태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직접적인 재정 투입과 정책 전환 등 건설경기를 살리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 중장기적 관점에서 건설업을 살리려면, 단기적 고통이 불가피하더라도 구조조정 등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