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동성 위기에 몰린 여천NCC가 DL로부터 긴급 자금 수혈을 받게 되면서 당장 급한 불을 껐다. 다만 자금 지원 방식을 두고 최대 주주인 한화그룹과 DL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DL케미칼은 11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2000억원 유상증자 안건을 통과시켰다고 밝혔다. DL그룹 지주회사인 ㈜DL은 DL케미칼 주식 82만3086주를 약 1778억원에 추가 취득한다. 지난달 말 한화솔루션이 자체 이사회를 열고 여천NCC에 대한 자금 대여를 승인한 데 이어 DL케미칼도 2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하기로 결정하면서 한 숨 돌릴 수 있게 됐다. DL케미칼은 한화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테스크포스팀(TFT)을 통해 여천NCC에 대한 경영상황을 꼼꼼히 분석한 뒤에 실질적인 경쟁력 강화 방안과 자생력 확보 방안을 도출해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1999년 4월 한화그룹과 DL그룹이 공동 설립한 석유화학 합작법인 여천NCC는 한화솔루션(옛 한화석유화학)과 DL케미칼(옛 대림산업)이 지분 50%씩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업계에서 에틸렌 생산능력 3위 기업이지만 2020년대부터 본격화한 중국발 공급과잉 여파로 실적 부진을 겪었다. 최근에는 전남 여수 3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급기야 여천NCC는 3100억원 자금 부족을 해결하지 못하면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질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최근 여천NCC는 한화와 DL에 3000억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한화그룹과 DL은 여러 문제를 두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DL은 여천NCC의 자생력 강화와 상생의 차원에서 여천NCC 손익이 개선되는 조건(하방 캡 설정, 20년 장기계약 등)을 제안했지만, 한화가 이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DL은 "여천NCC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단가로 에틸렌을 거래하며, 여천NCC의 자생력을 키우고자 했다"며 "반면 한화는 여천NCC가 손해볼 수 밖에 없는 가격만을 고수하는 등 자사에게 유리한 조건만 고집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화는 "원료 공급 계약은 법 위반이 되지 않도록 시장 원칙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정한 조건으로 체결돼야 한다"며 "원료 공급 계약과 단기 자금 지원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아울러 DL은 최근의 여천NCC 부도 위기설에 대해 "파트너사를 압박하는 언론 플레이가 과연 여천NCC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한화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DL케미칼에 대한 증자가 결정하였다는 공시가 있었지만 자금 용도가 운영자금으로 기재되어 있어 실제로 DL이 여천NCC에 자금을 지원할 의사가 있는지 확인이 어렵다"고 맞받았다.
여천NCC에 자금 지원이 이뤄지기 위해선 여천NCC 이사회 주주사(한화·DL)의 차입 결의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한화는 DL이 이 같은 조치에 관해 협의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한화는 "DL은 여천NCC를 지원하겠다는 명확한 의사 표명 없이 애매한 유상증자를 공개하며 합작사를 일방적으로 매도했다"고 유감을 표했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