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에선 한미·미중·북미정상회담 등 메가톤급 이벤트가 줄줄이 열릴 한국 외교의 ‘슈퍼 위크’가 될 가능성이 높아 세계의 눈과 귀가 경주에 쏠릴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아시아·태평양 일대 주요국 정상들은 오는 31일 개막하는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경주를 찾는다. 주요국 정상들이 한데 모이는 흔치 않은 자리인 만큼 이번 APEC은 ‘외교 전쟁터’가 될 전망이다. 우리나라와 미국, 중국뿐 아니라 APEC 회원국 대부분은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다양한 나라와 양자회담을 준비하고 있다.
가장 관심을 끄는 이벤트는 단연 미중정상회담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9일부터 1박 2일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0일부터 2박 3일간 국빈 방한한다. 미중 정상의 동시 국빈방문은 사상 처음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6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미중) 두 건의 국빈 방문을 하는 것은 특이하고 서울에서 하지 않는 국빈 방문은 초유의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29일 오후에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그간 난항을 빚어온 한미 관세협상이 마무리되고 안보 패키지까지 매듭지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어 30일에는 트럼프 대통령 2기 취임 후 처음으로 미중 정상이 회담을 갖는다. 전 세계적 주목을 받을 미중 정상회담 무대로는 부산 김해공항 공군기지 내 접견장인 나래마루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11년 만에 방한하는 시진핑 주석과 이 대통령의 한중 정상회담은 내달 1일 열린다. 그간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완전한 복원 궤도에 좀처럼 이르지 못했던 한중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지 주목된다.
이밖에 취임 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도 APEC 기간 개최된다.
이번 APEC 기간에는 또 하나의 빅 이벤트가 성사될 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바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깜짝 만남 성사 여부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집권 1기 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을 지낸 케이티 맥팔런드는 최근 시사 채널 ‘뉴스맥스’의 ‘더 카운트’ 시사 토크쇼에서 “도널드 트럼프로부터 항상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예상을 벗어난 일을 하리라는 점”이라며 두 정상의 깜짝 만남이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놨다. 그는 “만남 일정이 잡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트럼프가 집권 1기 때 김 위원장과 만났고 그 결과 북한이 핵무기 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만남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 만남으로 인해 북한 측의 신뢰를 얻은 트럼프 대통령이기에 이번에도 만남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얼마 전 전용기 안에서 김 위원장과 비무장지대(DMZ)에서 만날 가능성에 관한 질문을 받고 동승한 기자들에게 “그가 연락한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며 “지난 번(2019년 6월) 그를 만났을 때 나는 내가 한국에 온다는 걸 인터넷에 공개했다. 그가 만나고 싶다면 나는 분명히 열려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세계 주요국 정상들이 경주에 모이는 만큼 경찰은 보안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특히 각국 주요 인사들이 열차를 타고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경주역과 APEC 정상회의장으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 보문관광단지 일대는 보안·경비가 최고 수준으로 올라간 상태다.
보문관광단지는 경찰과 소방, 대통령경호처, 국가정보원이 각기 보유한 인력과 첨단장비를 총동원해 단지 내 회의장과 그 주변을 계속 감시 중이다. 정상회의장인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 일대에는 철제 펜스가 인도를 따라 설치돼 사람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했다. 또 각국 관계자들이 머물 호텔 건물 부지 경계선에는 약 2m 높이의 가림막이 세워졌다. 정상회의장과 숙소 부근에는 소방 헬기, 해양경찰 특공대 폭발물 처리반 차량 등 각종 장비가 배치됐다.
해양경찰은 회의장과 200m 남짓 떨어진 보문호수의 바닥을 샅샅이 뒤지면서 혹시 모를 수중 폭발물을 탐지했다. 회의 주간에도 보문호 수면에 고속특수기동정과 특공대를, 수중에 탐색로봇을 활용해 경계를 강화한다.
경찰도 26일 0시부터 을호비상을 발령했고 28일 0시부터는 가용 병력을 100% 동원하는 경비 비상 단계 중 최고 단계인 갑호비상으로 격상한다. 하루 최대 동원할 수 있는 2만2000명의 경찰이 행사 기간 경호·경비, 교통관리, 기습 시위 방지 등에 투입된다. 이 중 경찰특공대 180명이 회의장 주변을 지킨다.
27일 0시부터 내달 2일까지 회의장 반경 3.7㎞ 상공은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되며 드론은 물론 초경량 비행장치까지 모두 금지되며 안티드론 차량과 재밍건(전파 교란총)을 회의장, 숙소, 경주역, 불국사 일대에 배치했다. 항공기 테러 예방 조치도 시행 중이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