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철의 생활법률] 고령 운전자의 ‘운전할 권리’와 ‘안전할 권리’ 사이

사진=최유철 법무사

며칠 전, 춘천 외곽에 사시는 70대 후반의 어르신(A씨)이 상담차 사무실을 방문했다. 최근 경미한 접촉사고를 낸 뒤 자녀들이 “이제 운전을 그만두시라”며 성화라고 하소연했다.

 

“최 법무사, 나도 자식들 말이 맞는 걸 알지. 순발력도 예전 같지 않고 밤눈도 어두워. 그런데 면허 반납하면 당장 병원은 어떻게 가고, 읍내 장은 어떻게 보나? 여긴 버스가 하루 네댓 번 들어오는 게 전부야. 운전대는 내 발이나 마찬가지인데….”

 

A씨의 한숨은 단순히 운전을 계속하고 싶다는 고집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로부터 고립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자, 최소한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이동권’에 대한 절박한 호소였다.

 

최근 고령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운전면허 자진 반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7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 갱신 주기를 단축하고, 의무적 적성검사를 받도록 하는 등 도로교통법(제87조 등) 규제도 강화되었다.

 

면허를 반납한 어르신에게는 10만~20만 원 상당의 지역사랑상품권이나 교통카드를 지급한다. 하지만 A씨의 사례처럼, 당장의 ‘발’이 끊길 것 같은 막막함 앞에서 이러한 인센티브는 충분한 대안이 되기 어렵다.

 

특히 강원특별자치도처럼 고령 인구 비율이 높고 대중교통망이 촘촘하지 못한 지역에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최근 강원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지적되었다. 이무철 도의원은 “단순한 인센티브 제공을 넘어, 면허 반납 이후의 이동 어려움을 해결해 줄 교통 편의 지원이 병행되어야 진정한 교통복지”라고 강조했다.

 

즉, 어르신들의 ‘운전대’를 내려놓게 하기 전에, 그들의 ‘발’이 되어줄 대안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다행히 활용 가능한 제도는 이미 존재한다. 농어촌 지역에서 운영 중인 ‘희망택시(100원 택시)’와 ‘교통약자 특별교통수단(장애인 콜택시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제도가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버스 노선이 부족하고 운행 간격이 긴 곳은 농어촌뿐만 아니라 도시 외곽 지역도 마찬가지로 ‘교통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앞서 언급된 강원도의회의 제안처럼, 면허를 반납한 고령자를 대상으로 ‘희망택시’ 이용 대상을 확대하거나, 도심 지역 실정에 맞는 ‘도심형 이동지원모델’을 도입하는 것이 실질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단순히 “위험하니 운전하지 마십시오”라는 규제로 끝낼 것이 아니라, “면허를 반납하셔도 병원 가고 장 보시는 데 불편이 없도록 돕겠습니다”라는 적극적인 ‘교통복지’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안전한 도로와 어르신들의 이동권이 공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문제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첫째, 고령 운전 문제는 ‘규제’가 아니라 ‘복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면허 갱신을 까다롭게 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운전대를 내려놓은 뒤 겪게 되는 일상의 단절과 고립감을 해소할 ‘이동권 보장 대책’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면허 반납 인센티브는 ‘현금성’이 아닌 ‘서비스형’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일회성 상품권 지급보다는 면허 반납 어르신을 위한 ‘바우처 택시’, ‘희망택시’ 이용권 확대, 병원 방문 시 특별교통수단 우선 배차 등 지역 실정에 맞는 지속 가능한 교통 서비스가 필요하다.

 

셋째,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앙정부의 획일적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며, 각 시군구는 관련 조례를 적극적으로 제정·개정해 고령자가 면허 반납 후 겪을 불편을 최소화하는 맞춤형 교통복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넷째, 가족들의 따뜻한 관심과 현실적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 무조건 운전을 말리기보다 부모님이 거주하는 지역의 ‘교통약자 지원센터’, ‘희망택시’ 운영 현황 등을 먼저 확인하고, 면허 반납 후의 이동 계획을 함께 세워드리는 것이 불안감을 덜어드리는 데 도움이 된다.

 

모든 국민은 안전하게 도로를 이용할 권리가 있다. 동시에 모든 어르신은 나이를 이유로 사회와 단절되지 않고 원하는 곳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존엄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은 ‘안전’과 ‘복지’라는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갈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는 정책이다. 어르신들의 ‘발’을 묶는 것이 아니라, 더 안전하고 편안한 ‘새로운 발’을 제공하는 제도적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글쓴이: 최유철 (법무사, 부동산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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