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버 최고경영자(CEO)가 로보택시 시장을 “1조 달러를 넘어설 기회”라고 규정하며 자율주행 기반 이동 서비스의 본격 확산을 예고한 가운데, 한국의 모빌리티 산업은 여전히 규제의 벽 앞에 서 있다. 글로벌 플랫폼과 완성차, 기술 기업들이 로보택시 상용화를 향해 속도를 높이는 동안, 한국은 제도와 사회적 합의라는 복합적 과제를 풀지 못한 채 제한적 실증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전동화와 디지털 전환을 빠르게 수용해온 한국 자동차 산업과 달리 이동 서비스 분야에서는 규제 리스크가 혁신의 속도를 제약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의 자율주행, 기술은 가능·서비스는 제한
한국은 자율주행 기술 자체에서는 글로벌 상위권에 속한다. 국내 완성차 업체와 부품사, IT 기업들은 레벨 3 이상의 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했거나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또한 일부 고속도로 구간에서는 조건부 자율주행도 이미 도입됐다. 하지만 문제는 기술이 아닌 ‘서비스 모델’이다.
현행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체계에서는 자율주행 차량을 활용한 유상 운송 서비스가 매우 제한적으로만 허용된다. 자율주행 택시는 특정 지역과 시간 및 노선에 한해 실증 특례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일반적인 호출 기반 서비스로의 확대는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이는 우버가 강조한 로보택시의 핵심 가치인 ‘플랫폼 기반 대규모 확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택시 산업 보호 논리와 혁신의 충돌
한국 모빌리티 규제의 중심에는 택시 산업 보호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과거 카풀, 타다 사태를 거치며 이동 서비스 혁신은 사회적 갈등의 상징이 됐다. 이후 제도는 ‘기존 질서 유지’에 무게를 두는 진부한 방향으로 설계됐다.
로보택시 역시 같은 문제에 직면한다. 운전자가 없는 이동 서비스는 택시 종사자의 일자리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로보택시는 기술 발전과 무관하게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지 않으면 확산이 어려운 구조를 안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기술보다 이해관계 조정이 더 큰 허들”이라며 “로보택시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노동과 복지, 산업 정책이 얽힌 문제”라고 지적한다.
◆규제 샌드박스의 한계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자율주행과 모빌리티 서비스의 실증을 허용하고 있지만 이 역시 한계가 분명하다. 실증 사업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종료되거나 재심사를 받아야 하며, 사업 모델을 확장하거나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글로벌 기업들이 수천 대 단위로 로보택시를 운영하며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수십 대 수준의 실험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기술 고도화와 서비스 안정성 확보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우버가 말한 1조 달러 시장은 이러한 실증 단계를 넘어 제도적으로 허용된 상용 서비스가 전제될 때만 가능한 이야기다.
◆한국형 로보택시, 실현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한국이 로보택시 시장에서 완전히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도심 전면 확산이 아닌, 공항·신도시·산업단지·심야 교통 취약 지역 등 특정 수요가 명확한 영역부터 규제 완화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또한 로보택시를 기존 택시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 설정하는 정책 설계도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예를 들어 택시 법인과 플랫폼, 완성차 업체가 참여하는 공동 운영 모델이나, 고령화 사회에서 이동 약자를 위한 공공 서비스형 로보택시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1조 달러 시장’은 누가 쟁취하나
우버 CEO의 발언은 로보택시가 단순한 미래 기술이 아니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이 선점 경쟁에 돌입한 현실 산업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기회는 기술력만으로는 잡을 수 없다. 제도와 사회적 합의, 산업 구조 개편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한국은 ‘기술은 있지만 서비스는 없는 나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로보택시는 결국 도로 위를 달리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국가의 규제 철학과 산업 전략을 시험하는 무대”라며 “글로벌 모빌리티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는 지금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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