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K-국부펀드·투자기금 동시 추진…“역할 중복 우려”

150조 '국민성장펀드' 출범 시작
'한국형 국부펀드' 도입 공식화
대미 투자, 수출 기금은 별도 조성
중복 가능성 커…교통정리 시급

박상진(왼쪽 일곱번째부터) 산업은행 회장, 이억원 금융위원장,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등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산업은행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출범식에서 기념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4개의 대규모 펀드∙기금을 동시에 추진하며 미래 성장 동력 확보와 국부 증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민성장펀드 출범에 더해 ‘한국형 국부펀드’ 도입이 공식화됐다. 여기에 대미 투자와 전략 수출을 지원할 기금이 별도로 조성된다. 다만 이들 펀드와 기금의 성격이 조금씩 다른 만큼, 역할 중복 해소 등 교통 정리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4일 정부와 금융권 등에 따르면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150조원을 투자하는 국민성장펀드가 지난 11일 공식 출범했다. 국민성장펀드는 정부보증채권 75조원과 민간자금 75조원을 합쳐 150조원 규모로 조성된다. AI·반도체·바이오·로봇 등 첨단전략산업과 관련 생태계를 폭넓게 지원한다. 직접·간접투자·인프라 투융자·초저리 대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을 공급한다. 산업별 배분은 AI(30조원), 반도체(20조9000억원), 모빌리티(15조4000억원), 바이오·백신(11조6000억원), 이차전지(7조9000억원) 등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자금의 40% 이상은 지역에 배분된다.

 

 나아가 정부는 기존의 산업 지원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자산 자체를 불리는 ‘한국형 국부펀드’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성장펀드와는 운용 목적에서 차이가 있다. 한국형 국부펀드는 싱가포르 테마섹을 모델로 삼아 현세대의 부를 축적해 미래 세대로 이전하는 일종의 장기투자 기구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특정 산업 지원보다는 수익성 극대화를 최우선 목표로 한다. 고위험·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인내 자본’ 성격을 띤다.

 

 국부펀드는 용처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연금 지급이라는 목적 아래 안정적 운용이 필수인 국민연금과도 차별화된다. 정부는 구체적인 재원 조달 계획, 국부펀드 규모, 투자 분야 등은 전문가 의견 수렴과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정할 방침이다.

 

 이와 더불어 해외 진출 지원을 위한 대미 투자, 수출지원 등 두 개의 기금도 조성된다. 한국과 미국의 관세 협상 타결에 따라 전략적 산업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 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한미전략투자기금’을 한미전략투자공사에 만든다. 재원은 정부와 한국은행이 위탁하는 외환보유액 운용수익, 정부보증 채권 해외 발행 등으로 조달한다. 업무협약(MOU)에서 정한 대미 투자(연 200억달러 한도)와 조선 협력 투자 보증·대출 등 금융지원에 사용된다.

 

 기획재정부가 신년 업무보고에서 처음 밝힌 ‘전략수출금융기금’은 방산, 플랜트 등 글로벌 대규모 수주를 지원한다. 기존 수출금융 역할에 더해, 프로젝트 수익의 일부를 기금으로 환수해 산업 생태계에 재투자하는 구조가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펀드와 기금의 설립 취지 자체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다만 각 펀드와 기금 간 역할 구분이 다소 불명확해 중복 가능성이 크다고 목소리가 제기된다. 기존 정책금융도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어 각종 펀드·기금과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등의 역할이 중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일각에선 정부의 대규모 자금 조성이 민간 자금을 빨아들이는 ‘구축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또한 여러 펀드·기금의 지원이 일부 우량 기업에 집중될 경우, 해당 기업은 중복 수혜로 자금을 대거 끌어모으는 반면 지원에서 제외된 기업은 자금 조달 여건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 등은 향후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노성우 기자 sungco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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