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60%를 넘어서면서 임대차 구조가 전세 중심에서 월세 중심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예외적이던 월세·반전세가 이제는 평균적인 계약 형태가 됐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이러한 임대차 구조의 변화는 나아가 한국 가계의 지출 구조와 내수산업의 수익 구조를 동시에 바꾸는 흐름이다.
가장 먼저 변한 것은 가계부다. 월세 가구는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주거비 비중이 커지면서, 다른 항목에 쓸 수 있는 여유 자금이 줄어든다. 과거 한국은행의 연구에서는 소득구간별로 월세 비중이 1%포인트 상승할 때 저소득층 소비가 0.09%, 중소득층은 0.02%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1인 가구·청년층처럼 소득 수준이 높지 않은 계층일수록 식비, 외식, 여행, 문화, 사교육, 인테리어, 자동차·가전 구입 순으로 지출을 줄이는 경향이 뚜렷하다. 내수 경기 회복 국면에서도 체감이 잘 나지 않는다는 업계의 호소는 이 구조와 맞닿아 있다.
산업별로 보면 분위기가 극명히 갈린다. 자동차·가전·가구 같은 고가 내구재 시장은 한 번에 큰돈 쓰기를 꺼리는 소비자 탓에 교체 주기가 길어지고 중고·보급형·할부·리스 비중이 커지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외식·여행·공연·피트니스 등 선택적 서비스 업종 역시 월세 부담이 큰 계층을 중심으로 수요가 위축되는 모습을 보인다. 월세의 대세화는 필수재 중심 소비를 강화하고 선택재 소비의 회복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반면 렌털·구독 모델은 성장 동력을 얻고 있다. 정수기·비데에서 시작한 렌털은 건조기, 안마의자, 공기청정기, 헬스기구, 심지어 자동차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초기 구입 비용을 없애고 월 단위로 지출을 쪼개는 방식은 월세에 익숙한 가구의 심리에 잘 맞는다. 도심 소형 아파트와 오피스텔, 코리빙·셰어하우스 등 소형 임대주택 시장, 임대수익에 기반한 리츠와 임대형 부동산 금융 상품도 수요 확대의 수혜를 보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을 통해 정책과 기업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정책 측면에선 청년·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고 공공·중간임대 주택을 확충해 주거비 비중이 과도하게 치솟는 것을 막는 것이 내수 기반을 지키는 과제가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소유 중심 판매 모델에서 벗어나 구독·렌털·중고·소형 상품 등 월 단위 지출 구조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월세의 대세화는 부동산 시장의 통계 변화로만 끝나지 않는다”며 “주거비의 월 구독화가 가계의 씀씀이와 산업의 수익 모델을 함께 바꾸는 구조적 전환”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의 내수 성장 경로는 이 새로운 고정비 구조를 얼마나 빠르고 유연하게 반영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