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철의 생활법률] ‘관행’이라는 이름의 상품 훼손, 법원이 도매시장의 책임을 물은 이유

사진=최유철(법무사, 부동산학 석사)

수십 년간 농어민이 피땀 흘려 기른 농수산물. 우리는 이 소중한 결실이 도매시장에서 공정하게 경매돼 우리 식탁에 오르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만약 이 경매 과정에서 중도매인들이 상품 상자 위에 올라가 마구 밟고 다니며 상품을 훼손하는 ‘관행’이 수십 년간 이어져 왔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도매시장법인이 사실상 이를 방치해 왔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최근 서울 가락농수산물시장에서 바로 이 문제를 둘러싼 법적 다툼이 벌어졌다. 법원은 “조치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도매시장법인에 부과된 과징금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서울 가락시장의 도매시장법인 A사는 농수산물 위탁 경매 등을 운영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중도매인들이 경매 과정에서 상품 위에 올라가 물건을 훼손하는 행위가 오랜 관행처럼 이어져 왔고, 2011년부터 관련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2019년부터 A사에 “상품 위에 올라가는 행위를 금지하라”는 조치명령을 수차례 내렸다. 그러나 A사는 이를 반복적으로 이행하지 않았고, 결국 서울시는 2023년 10월 A사에 과징금 1,350만 원을 부과했다. A사는 이에 불복해 과징금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A사의 청구를 기각하며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왜 이러한 판단을 내렸을까.

 

이번 판결은 자신의 사업장에서 발생한 타인의 위법 행위라 하더라도,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주체에게는 그 ‘방치’ 자체만으로도 무거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A사는 "상품을 훼손한 주체는 중도매인이지, 우리가 아니다"라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도매시장법인은 단순한 장소 제공자가 아니다. 농수산물의 공정한 거래 질서를 확립하고 상품을 보호하며 시장 전반을 관리·감독할 법적 의무를 지닌 주체다. 중도매인들의 잘못된 관행을 인지하고도 이를 바로잡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이는 명백한 관리·감독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

 

서울시는 A사에 "상품 훼손 행위를 금지하라"는 공식적인 조치명령을 내렸다. 이는 행정청이 법에 근거해 내리는 구속력 있는 처분이다. A사가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 자체가 이미 법 위반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특히 A사가 조치명령을 반복적으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중대하게 판단했다. 법원은 상품 훼손 금지 조치가 3차 위반, 판매원표 관리 조치가 2차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반복적인 법규 위반은 가중 제재의 근거가 된다.

 

또한 법원은 서울시의 처분이 과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서울시는 A사의 반복된 위반 행위에 대해 원칙적으로 ‘업무정지 1개월’ 처분을 내릴 수 있었음에도, 이를 ‘15일’로 감경했고, 나아가 시장 유통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업무정지 대신 과징금으로 갈음했다. 이는 행정청이 오히려 A사의 사정을 상당 부분 고려한 처분이라는 것이다.

 

"오래된 관행이라 어쩔 수 없다", "내가 한 일이 아니다"라는 변명은 법적 책임 앞에서 통하지 않는다. 특히 자신의 사업장 내에서 발생하는 불법적·부당한 행위를 통제할 권한과 지위를 가진 관리자라면, 그 권한만큼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이번 판결은 농어민의 피땀 어린 상품을 보호하고 공정한 유통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시장 운영 주체에게 엄중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방치’ 역시 명백한 책임이라는 법원의 메시지에 우리 모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글쓴이: 최유철(법무사, 부동산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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