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국내 제조업의 전력 조달 구조를 바꾸고 있다. 기록적인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재생에너지 설비와 첨단산업 전력수요까지 늘면서 발전설비뿐 아니라 송배전망과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산업체 여름휴가가 집중된 지난달 7일 국내 전력시장 최대수요는 95.3GW를 기록했다. 올여름 최대이자 역대 다섯 번째로 큰 규모다. 산업체의 조업 감소가 없었다면 시장수요는 100.1GW, 자가용 태양광 등을 포함한 계통수요는 106.8GW까지 올라갔을 것으로 정부는 추산했다. 폭염 기간 태양광은 낮 시간대 총전력수요의 약 25%를 담당했다.
문제는 전력 생산량만이 아니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공장과 수도권 등 수요처로 보내는 송배전망이 새로운 병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이 집중된 호남은 일부 배전망의 수용 여력이 부족해 출력제어와 접속 지연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호남지역 32개 배전선로에 ESS를 구축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GW를 추가로 접속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전력이 남을 때 저장했다가 계통 여유가 생겼을 때 공급하는 방식이다.
기업들도 전력 조달 수단을 다변화하고 있다. 삼성전자 DS부문은 지난해 국내 사업장에서 6건의 신규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했다. 앞서 2024년에는 태양광 115MW와 시화호 조력발전 254MW 규모의 장기 PPA 계약을 맺었다. 삼성전자는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와 함께 CFE(Carbon Free Energy·무탄소에너지) 활용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LG전자도 창원 스마트파크에서 PPA와 ESS를 병행하고 있다. 스마트파크1에는 2.3㎿규모 비계통형 PPA와 3.2MW 규모 태양광 PPA가 도입됐고 스마트파크2에도 2㎿급 태양광 PPA가 적용됐다. 163㎿h 규모의 피크저감용 ESS는 공장 일평균 전력소비량의 약 15%에 해당하는 저장능력을 갖췄다.
공장 단위에서는 태양광·자가발전과 ESS, 에너지관리시스템을 묶는 마이크로그리드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외부 전력망에 의존하면서도 피크 시간대에는 자체 전력을 활용해 전력비와 공급 위험을 낮추는 방식이다.
전력 조달 문제에는 탄소 규제도 얽혀 있다. 수출기업들은 글로벌 고객사의 RE100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PPA와 재생에너지 인증서 등을 확보해야 한다. 동시에 반도체 등 24시간 안정적인 전력이 필요한 산업에서는 원전 등을 포함한 CFE 활용 필요성도 제기된다.
다만 CFE가 RE100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원전 등 무탄소 전원을 사용하더라도 RE100이 요구하는 재생에너지 사용 실적으로 자동 인정되지는 않는다. 기업 입장에서는 재생에너지 조달과 안정적인 무탄소 전력 확보를 별도의 포트폴리오로 관리해야 하는 셈이다.
정부도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보급과 이를 수용할 전력망 확충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원전을 포함한 중장기 전원 구성도 함께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폭염이 일상화하면서 전력은 단순한 비용 항목을 넘어 생산 안정성을 좌우하는 인프라가 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송배전망 확충과 함께 PPA·자가발전·ESS를 결합해 필요한 시간과 장소에 전력을 확보하는 능력이 제조업 경쟁력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