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학교 앞 분식집은, 오랜 추억이 담긴 곳이었다. 매콤하고 쫀득한 떡볶이. 야채와 함께 알록달록 토핑한 김밥. 엄마 손맛이 느껴지는 뜨끈한 국수까지. 학창 시절 친구와 아웅다웅하며 먹던 음식들이 생각난다.
가볍지만, 결코 허술하지 않은 든든한 한 끼였다. 음식에 대한 특별한 추억은 평범한 맛에 양념을 더해주고. 아련한 추억이 켜켜이 쌓인다.
‘추억의 분식집’이 요즘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인건비와 재료비 상승에 따른 부담이 커지면서 동네 분식점 뿐만 아니라 김밥 전문 매장도 줄고 있다. 올해 6월 기준 전국 분식점 사업자는 4만7863명으로 집계됐다.
전국 분식점 사업자는 2023년 11월 5만4088명에서 같은 해 12월 5만3760명으로 감소한 이후 31개월 연속 감소세다. 지난해 9월(4만9913명)에는 5만명 선 아래로 내려갔다.
고물가의 먹구름이 예상보다 빠르고, 강하게 우리 경제를 덮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1% 올라 2개월 만에 3%대로 재진입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중동전쟁 영향으로 4월 2.6%에서 5월 3.1%, 6월 3.2%를 기록했다가 7월 2.8%로 2%대로 내려왔지만, 지난달 다시 3%대로 올라섰다. 체감 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도 3.2% 상승했다.
실제로 김밥의 경우, 최근 1년간 외식비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김밥은 대표적인 노동 집약적 외식 메뉴라 인건비 상승이 가격 상승으로 직결된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기준 김밥 한 줄 평균 가격은 3869원으로, 지난해 7월(3623원) 대비 6.8% 올랐다.
이는 같은 기간 칼국수(3.6%), 삼겹살(3.3%), 냉면(2.2%), 자장면(2.1%), 비빔밥(2.0%), 삼계탕(1.5%), 김치찌개 백반(0.9%) 대비 월등히 높은 상승률이다. 지난해 12월 3723원에서 올해 1월 3800원으로 오른 데 이어 6월 3838원, 7월 3869원으로 올해 들어서만 총 세 차례 인상됐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3.0%로 만든 것도 이런 물가 위험을 의식해서다. 두 달 연속 금리를 올리는 ‘백투백(연속)’ 인상이었다. 경기 회복세는 예상보다 강하지만 물가 압력은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고 한은은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번 인상이 수도권 집값과 가계부채 증가세를 누그러뜨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물가 상승의 충격이 소득 수준별로 다르게 작용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하위 20~40% 가구의 2분기 식비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9% 늘었다. 전체 평균 증가율(3.3%)의 두 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앞으로 국제유가가 더 오르고 원화까지 약해지면 물가 부담은 한층 커질 수 있다.
문제는 또 있다. 내수와 수출 간 ‘경기 차별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다. 올 들어 수출은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연간 실적(7093억달러)을 넘겼다. 올 연말까지 무난히 1조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호황 덕분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국 경제가 수출 중심의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내수 부문의 체감 경기는 여전히 부진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영화 <오디세이>에서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뛰어난 지략으로 ‘트로이 목마’를 만들어 전쟁을 끝내지만, 그 승리는 불행의 근원이 된다. ‘위대한 승리’와 ‘참혹한 대가’는 ‘트로이 목마’의 두 얼굴이었다.
우리 경제는 아직 ‘트로이 전쟁터’에 있는 것 같다. 내수와 수출의 극심한 불균형 속에 마주하고 있다. 따라서 경기 상황을 반도체와 수출 실적으로만 파악해선 안 된다.
수출의 온기가 경제 전반에 골고루 퍼지지 않는 현실을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정부는 가계부채와 취약한 내수시장부터 제대로 정립하고, 자영업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역대급 반도체 호황이 장기적으론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갉아먹는 ‘트로이 목마’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경제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김민지 경제부장
김민지 기자 minj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