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탄핵과 MZ세대] “응원봉 매개로 결집, 젊은층 분노 상징”…전문가 4인 진단

(왼쪽부터)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이문원 문화평론가,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 본인 제공 및 뉴시스.

 신나는 K-팝을 배경으로 응원봉을 흔드는 시민들. 이곳은 공연장이 아닌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일대에서 진행되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촉구 집회 현장이다. 시위와 MZ세대들만의 전유물로 통하던 아이돌 문화의 융합은 2016년 본격화됐다. 그해 여름 이화여대 교내 시위에서 학생들이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른 것이 화제를 모았고, 이후 박근혜 국정농단 규탄 집회로 일부 전파됐다.

 

 정국 혼란을 규탄하며 8년 만에 다시 모인 시민들은 이제 촛불 대신 역시 MZ세대들이 공연장에서 들고 다니던 아이돌 응원봉을 거머쥐었다. 집회 참가 전 숙지하면 좋은 노래들로 구성된 ‘탄핵 플레이리스트’가 공유되고 있으며, 발광력이 좋은 샤이니의 ‘샤배트’와 NCT의 ‘믐뭔봄’ 등을 구하려는 수요도 늘었다. 외신은 “응원봉이 촛불을 대체하며 비폭력과 연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고 평가하고 있다.

 

 전례 없는 K-집회의 원동력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는 11일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 이문원 문화평론가,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 등 전문가 4인에게 이번 현상의 원인과 파급 효과에 대해 의견을 청취했다.

 

 ◆분노한 젊은층, 시위 주류 세력으로

 

 전문가들은 응원봉 시위가 이번 사태에 대한 MZ세대의 분노를 상징한다고 짚었다. 곽 명예교수는 “이번 사태가 삶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가 MZ세대의 집회 참여를 이끌었고, 이들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며 기성세대의 전유물이었던 시위에서 MZ세대가 주류로 올라섰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이번 탄핵 정국에서 젊은층의 적극적인 참여를 두고 “20~30대 여성들의 분노가 극대화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점차 선진국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가운데 윤 대통령이 정치 지형을 45년 전으로 되돌리려고 시도하자 젊은 여성들은 이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평론가는 아이돌 응원봉이 약 5만~7만원의 고가라는 점을 들면서 “대중 시위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으로 봤는데 이처럼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모습이 놀랍다”며 “아이돌 문화를 향유하는 10~30대 여성들이 시위 및 집회에도 많이 참여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공동 가치관 속에 응집력 키워주는 매개체

 

 전문가들은 응원봉이라는 매개체를 통한 연대의 힘에 주목했다. 같은 가치관을 가진 또래가 한자리에 모여 응집력을 키우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곽 명예교수는 “MZ세대는 K팝 댄스곡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응원봉을 흔들면서 연령이 비슷한 또래들과 함께 시위를 즐기고 있는데, 이를 통해 응집된 가치관이 만들어져 시위 참가자가 늘어나고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명예교수는 “취향이나 추구하는 가치를 토대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활동해 온 집단들이 집회를 통해 가치관을 연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 평론가는 “아이돌 응원봉은 태생부터 팬들의 소속감과 결속감을 위해서 생겨난 물건으로, 현재 집회에서도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며 “촛불은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나눠주는 물건이었다면 응원봉은 각자 직접 챙겨온 물건이라는 점에서 결속감은 더 끈끈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평론가는 또한 탄핵소추안 투표 불참에 항의하는 뜻으로 국민의힘 당사 앞에 도착한 근조 화환들도 아이돌 팬 문화와 겹쳐 보인다고 짚었다.

 

 K-팝이 미치는 영향이 높아지면서 팬 문화가 전 연령대로 확산한 것이 주효했다는 견해도 나왔다. 이 평론가는 “이화여대 시위로부터 8년이 흐른 지금 아이돌 문화가 더 짙어진 집회 분위기는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라며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아이돌 문화가 보편화 됐다. 아이돌 팬이 아니더라도 관련 문화를 알고 있으며 향유한다”고 분석했다. 이 명예교수도 “기성세대 역시 송가인, 임영웅 등 콘서트로 응원봉 문화에 익숙해지면서 이 같은 문화가 확산하는 측면이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곽 교수는 “오히려 기성세대도 ‘젊은 친구들 발상이 좋네’라며 재밌어하고, 이들과 어울리며 즐거움을 느끼는 모습”이라고 언급했다.

 

 실용성을 추구하는 MZ세대의 성향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파악했다. 곽 명예교수는 “MZ세대는 ‘이왕 하는 거 즐겁게 하자’는 실용적인 성향이 있다”며 “이번 시위에서도 MZ스럽게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격했던 과거 시위와 달리 MZ세대는 사람들에게 피로감이나 부담감을 주지 않으면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현명함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이 명예교수는 “응원봉은 촛불보다 소지하기 편리하고, 응원봉을 흔들면서 즐기기도 좋다”고 봤다.

 

이화연·오현승·박재림 기자 h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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