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비즈=오현승 기자] 주요 정부부처에서 장관이나 차관을 역임했던 거물급 관료들이 정유·화학회사에서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업계에선 고위 관료출신 인사들의 전문성과 경험을 기업 경영에 활용하기 위해 이들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고 설명한다.
16일 정유·화학업계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 이사회엔 장관 출신 인사가 두 명 포진돼 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규용 전 환경부 장관이 그 주인공이다. 윤증현 이사는 지난 2016년 3월 현대오일뱅크 사외이사에 선임된 후 지금까지 이사회 멤버로 활동 중이다. 현재 현대오일뱅크 이사회 내 감사위원회, 내부거래위원회,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는 지난 2009년 2월부터 2011년 6월까지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한 인물이다. 이에 앞서 지난 2004년부터 3년 여 간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겸 금융감독원 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윤 이사는 지난 2011년 ‘윤경제연구소’를 개소해 소장을 맡고 있다. 현재 5년 넘게 두산인프라코어 사외이사도 겸직 중이다.
이규용 이사는 지난 2006년부터 이듬해까지 환경부 차관을, 이후 1년 여 간 환경부 장관을 역임했다. 지난 2017년 3월부터 현대오일뱅크 사외이사로서 임무를 수행 중이다. 현재 김앤장 법률사무소 상임고문도 함께 맡고 있다. 지난해엔 한국환경한림원 회장에 선출됐다.
SK이노베이션에선 김정관 전 지식경제부 제2차관이 2년 넘게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정관 이사는 지난 2011년 7개월 여 간의 짧은 차관 생활을 마친 후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 경제자유구역위원회 부위원장, 한국무역협회 상근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는 금호타이어 사외이사도 맡고 있다.
에쓰오일(S-OIL)에선 홍석우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사외이사 활동을 5년 째 이어가고 있다. 그는 에쓰오일 이사회 내에서 보수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홍 이사는 지난 2011년 6월부터 약 5개월 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RA) 사장을 지낸 후, 같은 해 11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낸 거물이다. 홍 이사는 현재 컨설팅업체 AT커니코리아의 상임고문이기도 하다. 이 밖에 지난 2017년부터 1년 여 간 법무부 차관 및 법무부장관 직무대행을 했던 이금로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는 지난 3월 롯데케미칼 사외이사에 선임됐다. 임기는 2년 간이다.

사외이사제도는 대주주나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해 기업의 투명성을 높여 건전한 경영을 유도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상장회사는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일각에선 전직 고위 관료를 사외이사로 둔 데 대해 거물급 인사를 일종의 ‘방패막이’로 활용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일부 사외이사는 대형 로펌의 고문으로도 동시에 활동 중이다. 맹수석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외이사는 회사의 합리적 경영을 위해 이사회를 감시,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관료그룹과 기업이 밀착되는 건 일종의 ‘변칙적 경영기법’”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관련 업계에선 장차관 출신 사외이사의 장점을 강조한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갖춘 관료 출신 사외이사들의 의견을 기업 경영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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