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인데 자사주 소각 벌써 3조…주주환원 움직임 ‘활발’

밸류업 발표 앞두고 선제적 대응
20개 상장사 3.1조 규모 소각
SK이노베이션, 7936억 가장 많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코리아 디스카운(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 해소를 위한 움직임일까. 올해 들어 상장사들이 자기주식(자사주)을 소각한 규모가 3조원을 돌파했다. 금융당국이 주주 권리를 향상해 증시를 끌어올리는 이른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하는 것을 앞두고 상장사들이 자발적으로 자사주 소각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한화투자증권 제공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달 12일까지 상장법인 20개사가 총 3조1751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계획을 공시했다. 소각 규모 상위 5개 기업을 살펴보면 ▲SK이노베이션(7936억원) ▲삼성물산(7677억원) ▲KB금융(3200억원) ▲케이티앤지(3150억원) ▲하나금융지주(3000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자사주란 회사가 본인이 발행한 주식을 재취득하여 보관하는 주식을 뜻한다. 과거 자사주 취득은 ‘자본충실의 원칙’에 따라 금지됐지만 주주 환원 등을 이유로 1992년부터 상장사를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허용됐다. 자사주 소각은 발행 주식 수를 줄이면서 주당가치를 높인다. 주주의 이익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의 대표적인 주주 환원 활동으로 꼽힌다.

상장법인의 연도별 자기주식 소각 규모 추이. CEO스코어, 한화투자증권 제공

 상장법인의 자사주 소각 규모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2021년 2조5426억원을 기록한 자사주 소각 규모는 2022년 3조5740억원으로 1조원 넘게 증가했고, 지난해에도 4조7626억원을 기록해 전년보다 1조원 넘게 확대됐다. 특히 올해는 아직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소각 규모 합계가 벌써 3조1751억원에 이르면서 더 늘어날 전망이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를 앞두고 상장사들이 연초부터 잇따라 자사주 소각에 나서고 있다”며 “올해 들어 자사주를 소각한 유가증권 및 코스닥 시장 상장법인 20개사의 자사주 소각 규모는 3조원을 넘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사주 소각이 연초부터 활발한 배경에는 금융당국이 ‘상장법인 자기주식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고 주주 환원 정책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사실 국내 기업은 선진국과 달리 자사주 매입과 소각에 소극적이면서 주주 환원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기업들이 자사주를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자사주를 대주주의 사적 이익을 위해 악용한다는 지적을 줄곧 받아왔다. 소위 ‘자사주 마법‘이라 불리는,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도 신주를 배정하는 기업 구조개편 방식이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힌다. 제3자에게 처분 시 자사주의 의결권을 부활해 대주주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방식 또한 문제가 됐다.

 

 이에 금융당국은 지난달 말 상장법인의 자사주 제도 개선 간담회를 개최하고 자사주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개선안에는 일반 주주의 권익 제고, 자사주 취득·보유·처분 전 과정에 대한 공시 강화 등을 내용을 포함했다. 나아가 상반기 중 자본시장법 시행령 등 개정을 목표로 후속 절차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금융당국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세부안을 이달 중 발표하는 것도 상장사의 자사주 소각에 영향을 미쳤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마련한 정책이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정부는 공시 제도 손보고 규제 강화를 통해 기업이 자율적으로 자사주를 소각하도록 유도했다”며 “정부는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유은정 기자 viayou@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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