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역경 딛고 일어난 K-산업 결정적 순간들] 3대 망할지언정 독립운동… ‘100년 기업’ 우뚝

독립운동에 투신하며 국민훈장과 건국훈장을 받은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 유한양행 제공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 일제강점기 국권을 되찾기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 오히려 불우한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는 슬픈 자화상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6월 현충일에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그런 말은 없어져야 한다며 인용을 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분위기는 다르지 않았을 터. 그럼에도 광복을 믿는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나섰고, 기업인들도 주로 독립운동가와 단체에 지원금을 대는 방식으로 일제에 맞섰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허만정 GS그룹 창업주,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 안희제 백산상회 창업주 등이 대표적이다. 독립자금 지원을 넘어 직접 독립운동에 투신한 기업가도 있었다.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 민강·윤창식 동화약품 사장 등이 그랬다. 창업주의 애국심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이들 기업을 살펴봤다. 

 

 ◆소년병 자원부터 비밀침투작전 훈련까지… 유한양행의 자부심

 

 유일한(1895~1971) 선생은 미국 유학 중이던 1909년 14살 나이에 조국 독립을 위한 군사학교인 한인소년병학교에 자원입대했고, 1919년에는 서재필, 이승만과 함께 재미교포들의 3·1운동이라 불리는 한인자유대회에 참가해 대표로 결의문을 작성하고 낭독했다.

 

1909년 14세 나이로 재미한인소년병학교에 자원 입대한 유일한 선생(앞줄 오른쪽). 유한양행 제공

 

 미시간대 졸업 후 현지에서 식품회사를 창업해 성공한 청년실업가로 살던 그는 1926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해 12월10일 ‘건강한 국민만이 장차 교육도 받을 수 있고, 나라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제약회사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아울러 유한양행의 해외지사는 유사시에는 항일운동의 지하조직 거점으로 운영됐다고 전해진다.

 

 유 선생은 1938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1942년 미육군전략처(OSS) 한국담당 고문으로 LA에서 재미한인들로 구성된 맹호군 창설을 이끌었다. 그리고 1945년 OSS가 비밀리에 준비한 한반도 침투수복 작전 냅코(NAPKO) 프로젝트의 조장을 맡았다. 당시 50세라는 나이에 특수군사훈련과 공수훈련을 받으며 독립운동의 일선에 나선 것. 프로젝트는 일제의 항복에 따른 우리나라의 광복으로 실행되지는 않았다.

 

 이후 1945년 미국 버지니아에서 열린 태평양연안 12개국 총회에서 한국 대표로 참석, 전후 일본 처리 문제를 논의한 유 선생은 광복 25주년인 1970년 8월15일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이듬해 76세 나이로 영면한 그는 국민훈장 무궁화장(1971년) 및 건국훈장 독립장(1995년) 추서에 이어 1996년 정부가 선정한 독립운동가 및 문화인물로 선정됐다.

 

유일한 선생의 청년 시절 모습. 유한양행 제공

 

 독립운동가 뿐 아니라 기업가, 교육가, 사회사업가로서 능력도 뽐낸 유 창업주의 리더십 아래 유한양행은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국내 제약사 최초로 연 매출 2조원 돌파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내년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회사는 구 사옥 리노베이션 공사를 통해 창업주 기념관 및 역사관을 준비하고 있다.

 

 임직원의 자부심도 상당하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유일한 박사님의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이바지하자’는 창업 정신이 인상적”이라며 “유한양행의 일원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며 그 정신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다른 제약사에서 이직을 한 직원도 “이곳에 와서 유일한 창업주의 생애를 자세하게 알게 됐다.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역대 CEO 3명이 독립운동에 헌신”… 128년 민족기업 동화약품

 

 국내 최초의 제약기업 동화약품도 우리나라의 독립에 큰 역할을 했다. 초대사장 민강(1883~1931) 선생은 국내 최초의 양약 활명수를 개발한 부친(민병호)과 함께 1897년 동화약방을 열었다. 민 선생은 1909년 각계 인사 80여 명과 함께 항일단체인 대동청년단을 조직했으며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는 동시에 한성 정부 수립과 국민대회 개최를 추진했다.

 

민강 동화약품 초대사장. 동화약품 제공

 

 아울러 상해임시정부와의 비밀연락기관인 연통부, 그중에서 서울연통부의 책임자를 맡았다. 그는 동화약방 내부에 서울연통부를 두고 각종 정보와 군자금을 전달했다. 활명수를 판매한 돈도 독립자금으로 임시정부에 전했다.

 

 민 선생은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몇 차례 경찰에 체포돼 취조를 받았고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1931년 48세 나이로 눈을 감았다. 훗날 독립운동가로 국가의 인정을 받으면서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고 3년 뒤 서울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에 안장됐다. 아울러 1996년 광복절, 동화약방 창업지이자 동화약품 옛 본사(서울 중구 서소문로9길14)에 서울연통부 기념비가 제막됐다.

 

동화약품 창립지에 세워진 서울연통부 기념비. 동화약품 제공

 

 동화약품 5대 사장인 윤창식(1890~1963) 선생도 독립운동가로서 나라에 헌신했다. 1915년 최규익, 최남선 등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단체인 조선산직장례계를 조직해 총무를 맡았으며, 이후 항일민족단체 신간회에서도 활동했다. 1946년에는 이승만 총재, 김구 부총재가 이끈 대한독립촉성국민회에 상공계 대표로 중앙위원이 됐다.

 

 특히 윤 선생은 1937년 동화약방을 인수하면서 “오직 생명을 살리는 좋은 약만 만들자. 이 땅에서 핍박받는 동포들을 돕고 일제에 의해 쫓겨나 해외에서 유랑하는 동포들에게도 동화의 양약이 전해지게 하자”는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창식 동화약품 5대 사장. 동화약품 제공

 

 아울러 7대 사장인 윤광열(1924~2010) 명예회장은 1949년 동화약방 입사 전 1945년 광복군 주호지대 5중대장을 맡았다. 올해 창립 128주년을 맞이한 동화약품은 “역대 CEO 3명이 독립운동에 헌신한 명실상부한 민족기업”이라며 자부심을 보였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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