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發 산업 패러다임 전환] 산업계 기후대응, 전문가 의견은?…‘데이터·금융·공급망’ 묶는 통합 전략이 관건

서울 등 내륙에 낮기온 33도의 무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1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분수대에서 어린이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뉴시스

 

기후위기는 국내 산업에 외생 변수가 아니라 생존 변수가 됐다. 폭염·홍수 등 이상기후가 각종 비용 상승 등으로 생산과 물류를 흔들면서 각 기업은 기후 재난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계량하고 자본을 연결, 공급망과 공동 대응하는 통합 전략을 요구받고 있다.

 

27일 전문가들에 따르면 항공·반도체·철강 등 기후변화에 따라 가장 크게 변화를 맞게 될 핵심 업종에서 이러한 전략이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정밀 데이터로 리스크를 계량하고, 정책·전환금융으로 투자 문턱을 낮추며 공급망 단위로 비용과 위험을 분담하는 통합 실행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먼저 항공업계의 화두는 지속가능항공유(SAF) 확산이다. 전 세계 탄소 배출량에서 항공산업은 약 2∼3%를 차지한다. 자동차나 선박보다는 비중이 적다. 문제는 전기나 수소로 대체가 가능한 자동차나 선박과 달리 항공기는 대체가 불가능하다. 더구나 고도가 높은 하늘에서 탄소를 배출하면 온실 효과가 더 크다는 연구까지 이어지면서 전 세계 항공업계는 탄소 감축 수단으로 지속가능항공유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지속가능항공유는 바이오매스, 폐식용유, 동식물성 기름, 폐플라스틱 등을 활용해 기존 항공유를 대체할 수 있도록 개발됐으며 실제 탄소 감축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미 캘리포니아주 매머드레이크스의 매머드 마운틴 스키장에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제설 차량이 눈을 치우고 있다. AP/뉴시스

 

국내 시장은 초기 단계여서 민간 투자만으로는 전환 속도가 더디다. 혼합사용 의무화와 가격안정 장치(차액정산·세제 지원 등)가 세트로 작동해야 수요와 공급이 함께 열린다. 원료 수급, 국제 인증, 통상 리스크를 포함한 공급망 안정화 없이는 조기 상용화가 어렵다.

 

최동원 산업연구원 탄소중립산업전환연구실 부연구위원은 “항공 탄소중립의 관건은 SAF 확산”이라며 “혼합의무와 가격안정 장치를 병행하고 초기 위험은 정부·공공·금융권이 공동 투자 프레임으로 분담해야 민간 투자가 붙는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또한 반도체·디스플레이는 배출권거래제(ETS) 설계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분위기다. 배출권거래제는 국가나 기업별로 탄소 배출량을 사전에 확정하고, 탄소배출량을 발생시키지 않았을 때, 이를 탄소배출권 거래소에서 팔거나 초과분을 거래하는 제도를 일컫는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외에도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이에 대한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삼불화질소(NF₃) 등의 규제에도 대응해야 한다. 삼불화질소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전지 제조 공정에서 사용되는 무색·불연성 독성 가스로 국내에서는 온실 가스로 규정돼 있지 않지만 연구 결과, 이산화탄소보다 지구 온난화 지수(GWP)가 훨씬 높은 물질로 전 세계적으로는 규제 대상이다. 이에 대해 기술 도입 지원과 연동한 단계적 적용이 현실적이며, 간접배출·무료 및유상할당·이월 규정 등 세부 룰을 공정 특성에 맞춰 다듬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남상욱 산업연구원 신산업·디지털 전환 분야 부연구위원은 “한국은 공정배출까지 포괄하는 ETS 설계가 특징”이라며 “NF₃ 저감 기술 도입 지원과 규제의 단계적 적용을 결합해야 감축과 경쟁력을 함께 달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철강·시멘트 등 중후장대 업종도 탄소 배출 주요 업종이기에 수요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소재 효율 개선, 경량화, 재사용·재활용을 전과정평가(LCA)와 묶고, 업종별 요인분해 결과를 투자 우선순위와 공공조달 인센티브에 반영하면 공급 측 기술에만 의존하는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제를 풀어나가려면 무엇보다 정책금융과 전환금융의 동시 적용이 필요하다. 초기 기술·설비 투자에 대한 위험을 공공이 흡수(보증·저리·혼합금융)하고,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규모의 경제를 앞당겨야 한다. 동시에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외부 규제에 대응해 산업·무역·금융 정책을 연동하는 것이 기업의 전환 속도를 좌우한다. CBAM은 EU 내로 수입되는 역외 생산 제품에 대하여 EU 내에서 생산될 때 지불하는 탄소 비용과 동등하도록 추가적인 탄소 가격을 부과∙징수하는 제도다. 

 

현직에 있는 한 관계자는 “한국 산업계의 기후대응은 ‘무엇을 줄일 것인가’보다 ‘어떻게 줄이면서 이길 것인가’의 문제”라며 “정밀 데이터로 리스크를 계량하고 정책금융으로 투자 문턱을 낮추며, 공급망 연합으로 비용을 나눌 때 기후대응은 규제 준수를 넘어 새로운 경쟁우위가 된다”고 말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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