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 규제샌드박스 제도가 2019년 시행된 후 어느덧 7년이 지났다.
지난해까지의 신청 현황을 보면 기업들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지점이 드러난다. 바로 사업 가능 여부에 대한 확인이다.
윈트 행정사사무소가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7년 동안 접수된 ICT 규제샌드박스 신청 777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실증특례나 임시허가가 아닌 ‘신속처리’였다.
신속처리는 377건으로 전체의 48.5%를 차지했다. 이어 실증특례 297건(38.2%), 임시허가 76건(9.8%), 적극해석 27건(3.5%) 등이었다.
신속처리는 신기술·서비스 관련 허가 필요 여부를 신속히 확인하는 제도다. 실증특례와 임시허가가 규제 특례 지정을 통해 사업 추진을 지원하는 제도라면 신속처리는 신기술·서비스가 현행 법령상 허용되는지, 별도 허가나 승인 등이 필요한지를 확인하는 성격이 강하다.
즉 기업들이 처음부터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기보다 사업 추진에 앞서 ‘이 사업을 해도 되는지’, ‘별도의 허가가 필요한지’ 여부를 먼저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ICT 분야 기업들이 마주한 현실을 보여준다. 기술과 서비스는 빠르게 변하지만 법령과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사업 모델을 설계하는 초기 단계부터 법적 불확실성에 부딪힌다. 특히 새로운 융합서비스일수록 어느 법령이 적용되는지, 어느 기관의 허가가 필요한지, 기존 규제에 저촉되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ICT 규제샌드박스는 단순히 규제특례를 부여하는 제도를 넘어 기업이 사업 추진 가능성을 사전에 확인하는 규제 판단 창구로도 활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규제샌드박스의 핵심 기능이 시장 진입 지원에 있다면 그 출발점은 규제 불확실성을 줄이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있다.
최근 흐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도 유형별 신청 현황을 보면 최근에는 임시허가보다 실증특례 신청 비중이 커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임시허가 신청은 2020년 25건 이후 감소세를 보이며 2024년 2건, 지난해 1건에 그쳤다. 반면 실증특례는 2024년 60건, 지난해 41건으로 해당 연도 신청 유형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기업들이 즉각적인 허가를 통해 시장에 진입하기보다 제한된 범위에서 신기술·서비스의 안전성과 사업 가능성을 확인하려는 방식으로 제도를 활용하는 흐름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체 신청 구조를 보면 사전 규제 확인 수요와 실증 기반 검증 수요가 ICT 규제샌드박스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ICT 규제샌드박스가 한 단계 더 실효성 있는 제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과제가 중요하다.
우선 신속처리 절차의 실효성을 더 높여야 한다. 기업이 사업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데 과도한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도록 보다 명확하고 신속한 판단 체계가 필요하다.
신기술 기업에게 시간은 곧 경쟁력이다. 규제 여부를 확인하는 단계에서 불확실성이 오래 지속되면 투자 유치와 서비스 출시, 시장 선점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둘째, 신속처리 사례를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공개할 필요가 있다. 유사한 사업 모델을 가진 기업들이 같은 질문을 반복하지 않도록 축적된 판단 사례를 데이터베이스화해야 한다.
이는 개별 기업의 행정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시장 전체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ICT 규제샌드박스는 지난 7년 동안 신산업의 시장 진입을 지원하는 중요한 제도로 기능해 왔다. 이제는 개별 특례 부여를 넘어 기업들이 법적 불확실성을 줄이고 보다 명확한 기준 위에서 사업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혁신은 규제가 전혀 없는 환경에서만 자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규제 환경 속에서 더 안정적으로 확산된다. 기업들의 물음표를 신속하게 마침표로 바꿔주는 것, 그것이 ICT 규제샌드박스가 앞으로 더 강화해야 할 역할이다.
글=류경재 윈트 행정사사무소 대표행정사, 정리=정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