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결제 시장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국회와 업계에서는 디지털 통화 주권을 지키기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해외 거래소로 자금이 빠져나가는 상황이 이어지는 만큼 한국도 제도 정비를 통해 디지털 금융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동향과 한국 디지털 경제의 기회’ 세미나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제도화 논의와 디지털 금융 주도권 경쟁이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이번 행사는 사단법인 디지털융합산업협회(DCIA)가 주관하고 더불어민주당 이강일·민병덕 의원 등이 공동 주최했다.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인 테더(Tether)와 리플(Ripple) 관계자들도 참석해 글로벌 규제 흐름과 한국 시장 가능성을 진단했다.
최근 스테이블코인은 단순 암호화폐를 넘어 디지털 결제·송금·정산 인프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달러 패권 유지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유럽연합(EU)은 MiCA 규제를 통해 제도권 편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일본과 홍콩 역시 은행 중심의 발행 체계를 구축하며 시장 선점 경쟁에 나선 상태다.
반면 한국은 높은 디지털 금융 인프라와 세계 최대 수준의 가상자산 거래 규모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제도 정비는 상대적으로 더디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투자 자금 상당수가 해외 거래소 기반 달러 스테이블코인 시장으로 빠져나가는 구조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세미나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방식도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히 발행 주체를 은행 중심으로 제한할지, 핀테크·플랫폼 기업까지 참여를 허용할지가 향후 정책 방향을 가를 핵심 변수로 거론됐다.
김기흥 디지털융합산업협회 회장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은행 중심 단일 구조로 갈지, 은행과 비은행이 함께 참여하는 복수 트랙 구조로 갈지 중요한 정책 과제”라며 “주요국 사례를 참고해 한국형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업계 관계자들은 스테이블코인을 단순 투자 자산이 아닌 ‘디지털 금융 기반시설’로 바라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빈센트 척(Vincent Chok) 퍼스트디지털 CEO는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디지털 금융 시스템의 핵심 인프라로 발전하고 있다”며 “아시아 시장은 모바일 결제와 디지털 금융 수요를 바탕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할 가능성이 큰 지역”이라고 평가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미국·유럽·홍콩·일본 등이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한국 역시 규제 공백 장기화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경태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국내 정책 논의에서 스테이블코인은 큰 변곡점에 서 있다”며 “이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예금·소비의 대체재가 아닌 실시간 정산 인프라 사용으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보고서는 해외 플랫폼 중심으로 유동성이 이동하는 상황에서 국내 제도화 지연이 장기화할 경우 결제·정산 주도권 약화 우려가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주희 기자 jh224@segye.com